[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예로니모 성인은 347년 무렵 달마티아의 스트리돈(현재 보스니아의 그라호보 근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로마에서 라틴 말과 그리스 말을 공부한 다음 트리어에서 정부 관리로 일하였으나, 수덕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사막에서 오랫동안 은수 생활을 하며 히브리 말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379년 사제가 되어 382년 다마소 1세 교황의 비서로 일하면서 교황의 지시에 따라 성경을 라틴 말로 옮겼는데, ‘대중 라틴 말 성경’이라고 하는 『불가타』(Vulg▥ta)가 그것이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그는 성경 주해를 비롯하여 많은 저술을 남기고 420년 무렵 베들레헴에서 세상을 떠났다. 암브로시오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다.
입당송
시편 1,2-3 참조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제때에 열매를 맺으리라.
본기도
하느님, 복된 예로니모 사제에게 성경의 진리를 깨닫고 맛들이게 하셨으니 저희도 하느님 말씀에서 생명의 샘을 찾고 구원의 양식을 얻어 더욱 풍요로이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많은 민족들이 주님을 찾으러 예루살렘에 오리라.>
▥ 즈카르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8,20-23
20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민족들과 많은 성읍의 주민들이 오리라.
21 한 성읍의 주민들이 다른 성읍으로 가서
“자, 가서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고
만군의 주님을 찾자. 나도 가겠다.” 하고 말하리라.
22 많은 민족들과 강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에서 만군의 주님을 찾고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러 오리라.
23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그때에 저마다 말이 다른 민족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87(86),1-3.4-5.6-7(◎ 즈카 8,23 참조)
◎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
○ 거룩한 산 위에 세운 그 터전, 주님이 야곱의 어느 거처보다, 시온의 성문들을 사랑하시니, 하느님의 도성아, 너를 두고 영광을 이야기하는구나. ◎
○ 나는 라합과 바빌론도 나를 아는 자로 여긴다. 보라, 에티오피아와 함께 필리스티아와 티로를 두고 “그는 거기에서 태어났다.” 하는구나. 시온을 두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여기서 태어났으며, 지극히 높으신 분이 몸소 이를 굳게 세우셨다.” ◎
○ 주님이 백성들을 적어 가며 헤아리신다. “이자는 거기에서 태어났다.” 노래하는 이도 춤추는 이도 말하는구나. “나의 샘은 모두 네 안에 있네.” ◎
복음 환호송
마르 10,45 참조
◎ 알렐루야.
○ 사람의 아들은 섬기러 왔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51-56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티모 3,14-17)와 복음(마태 13,47-52)을 봉독할 수 있다.>
복음 묵상
예수님과 자신들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사마리아 사람들 때문에 제자들은 화가 났죠. 야고보와 요한이 참다못해 예수님께 이렇게 아룁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야고보와 요한이 던진 이 말의 분위기나 느낌을 통해 당시 예수님과 제자들이 지니고 있었던 놀라운 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병자 치유뿐 아니라 죽은 사람도 일으켜 세우고, 그 지독한 악령들도 쉽게 물리쳤죠. 호수 위를 산책하듯 유유히 걸어 다녔는가 하면 바다의 풍랑도 멈추게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무시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 머리 위로 불을 내려 한순간에 멸망시켜 버리는 일 역시 충분히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꾸짖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다시 세우기 위한 것이었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지 생명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물 기도
주님, 저희가 복된 예로니모를 본받아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구원의 제물을 바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예레 15,16 참조
주 하느님, 당신 말씀을 찾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복된 예로니모를 기리며 성체를 받아 모시고 기뻐하오니 주님을 믿는 저희의 마음을 북돋아 주시어 거룩한 가르침을 깨닫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예고하신 대로 고난과 죽음을 겪으실 것입니다. 억울한 죽음을 향한 여정이기에 슬프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루카 복음사가는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루카 9,51)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영광으로 건너가실 것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기에 희망에 차 있습니다. 동시에 하느님 계획 안에서 이 죽음과 영광이, 그때가 자리매김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 신뢰에 차 있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운명을 느끼시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습니]다”(9,51). 이 구절을 굳이 루카 복음사가가 표현한 글자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기로) 얼굴을 고정하셨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 얼굴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고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곳을 보시지 않고 하느님께서 당신께 맡기신 사명만을 보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 표현이 히브리 말 표현이고 루카 복음사가의 신학 안에서 예수님의 죽음은 고통받는 주님의 종의(이사 53장 참조) 모습을 지닌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50,7).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한 덕분에 당신의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주님의 종의 모습은,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예수님 마음속 숨겨진 힘을 우리에게 밝히 드러냅니다. 그분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