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복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벗이라는 이유가 빵을 주는 데 있어 요건이 되지 않습니다. ‘줄곧 졸라대니까’ 빵을 줍니다. ‘졸라대다’라고 번역한 그리스말은 ‘아나이데이아’로 뻔뻔함, 혹은 무례함을 말합니다. 빵을 얻고자 하는 이가 뻔뻔하고 무례하다면 빵을 얻을 리 만무할 텐데, 친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벗에게 빵을 건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의 ‘착한 일’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주는 이는 자신의 인자함이나 자비로움에 맞갖는 받는 이의 입장을 미리 예단하게 되지요. 적어도 받고자 하는 이의 태도 말입니다. 머리를 조아릴 것까지야 없지만, 그래도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받는 이의 상식적 태도라고 흔히들 여깁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는 그 상식적 태도 너머에 있습니다. 무턱대고 그냥 무엇이든 주십니다. 하느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의 상식, 관행, 도덕, 윤리 너머에 하느님의 자비가 있습니다. 선한 이든, 악한 이든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열 손가락 중 아픈 손가락이 있어도 그 손가락은 내 것인 이유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