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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미사
[녹]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백] 카페스트라노의 성 요한 사제
  입당송
시편 17(16),6.8 참조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6,19-23
형제 여러분,
19 나는 여러분이 지닌 육의 나약성 때문에 사람들의 방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이 전에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에 종으로 넘겨
불법에 빠져 있었듯이,
이제는 자기 지체를 의로움에 종으로 바쳐 성화에 이르십시오.
20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로움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21 그때에 여러분이 지금은 부끄럽게 여기는 것들을 행하여
무슨 소득을 거두었습니까?
그러한 것들의 끝은 죽음입니다.
22 그런데 이제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23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지만,
하느님의 은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2.3.4와 6(◎ 40〔39〕,5ㄱㄴ)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필리 3,8-9 참조
◎ 알렐루야.
○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머물려고 모든 것을 해로운 쓰레기로 여기노라.
◎ 알렐루야.
  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예수님의 평화는 분열을 마땅히 불러옵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갈등의 부재가 아니라 갈등을 부추깁니다. 태초부터 우리는 ‘제 종류대로’ 저마다 다르게 창조되었고 다름을 조화로 만들어가야 할 책임을 운명으로 받았습니다. 다름과 조화는 우리 존재의 속성이기도 하여,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사실은 하나의 뜻 안에 하나의 행위를 거부합니다.(바벨탑 이야기의 교훈이기도 하지요.) 서로 다른 뜻과 결이 다른 행위들 안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고유함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분열은 그 고유함을 획일적 잣대로 거부하는 상황에 대한 비판에서 옵니다. 맞서고 갈등을 빚는 것은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오는 당연한 현상임에도 우리는 다름을 감당하기 싫어합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그러므로 지치지 않는 논쟁 한가운데 있습니다. 서로가 다르다는 증언, 그러므로 하나가 되고자 하는 힘센 이들의 고집에 대한 저항, 목소리를 내지 못해 억눌린 이들을 대신할 외침 등등이 그 논쟁입니다. 결국 우린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박해는 은총’이라고….(1베드 2,19)
  예물 기도
주님, 저희가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 예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은총으로 저희를 씻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드리는 이 성찬의 제사로 더욱 깨끗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3(32),18-19 참조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주님은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신다.

<또는>

마르 10,45 참조
사람의 아들은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천상 잔치에 자주 참여하여 현세에서 도움도 받고 영원한 신비도 배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저는 어릴 때 동생과 많이 다투었습니다. 동생이 마음에 안 들어서, 동생이 대들어서, 동생이 말을 안 들어서 다투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한테 걸리면 둘 다 무척 혼났습니다. 한번은 속옷 바람으로 둘 다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겨울이라 해는 져서 어둡고 추운데, 서럽기는 왜 그리 서러운지 동생과 저는 훌쩍이며 울다가 서로 화해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고 어머니한테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면 다시 다투고, 또 화해하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투기는 하였어도 쉽게 화해하였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이제는 다투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지금은 화해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는 쉽게 싸우지 않습니다. 그 대신 싸운 뒤에 쉽게 화해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가족과 갈라져 싸워야 한다면 예수님을 쉽게 따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단조로운 하루하루의 삶에서 오는 편안함이 아닙니다. 분열과 어려움을 겪은 뒤에 오는 평화, 하느님과 일치하며 누릴 수 있는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치를 통한 평화를 주시고자 우리가 분열이라는 어려움을 겪기를 바라십니다. 분열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분열을 넘어, 예수님의 평화를 얻기를 기도합시다.
(이찬우 다두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