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더보기
슬라이드배경

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미사
[녹]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105(104),3-4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자라나게 하시고 저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어떠한 피조물도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8,31ㄴ-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9(108),21-22.26-27.30-31(◎ 26ㄴ 참조)
◎ 주님, 당신 자애로 저를 구원하소서.
○ 하느님, 당신은 저의 주님. 당신 이름 생각하시어 저를 돌보소서. 당신의 좋으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저는 가련하고 불쌍한 몸, 마음속에는 구멍이 뚫렸나이다. ◎
○ 주 하느님, 저를 도우소서. 당신 자애로 저를 구원하소서. 당신 손길을 그들이 깨닫게 하소서. 주님, 당신이 이루셨나이다. ◎
○ 나는 입을 열어 주님을 한껏 찬송하고, 많은 이들 가운데서 그분을 찬양하리라. 그분은 불쌍한 이의 오른쪽에 서시어, 심판자들에게서 그를 구원하시네. ◎
  복음 환호송
루카 19,38; 2,14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찬미받으소서.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
◎ 알렐루야.
  복음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31-35
31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그 길은 수난과 죽음의 길이고, 예수님은 그 길을 끊임없이 걷고자 하십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길이 가리키는 바를 정확히 드러내는 공간입니다. 루카 복음은 그 시작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루카 1,16) 루카 복음은 어떻게든 수많은 사람을 하느님의 공간,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하고 싶은 열정을 품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지도 속 한 고을이 아니라, 우주를 품고 모든 생명체가 함께할 하느님의 자리입니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길이 그런 예루살렘에서 끝이 나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그러므로 하나의 점이 아니라 끝없이 확장되는 역동적 공간이어야 합니다. 나와 너의 공간, 우리의 공간, 모두의 공간이 예수님의 길이어야 합니다. 저마다의 삶이 희로애락에, 저마다 삶의 우여곡절 안에 예수님의 길은 수많은 길로 분화되고 엮여집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삶 안에서 당신의 모습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만들어 가십니다.
  예물 기도
주님, 주님께 올리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가 바치는 제사가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20(19),6 참조
당신의 구원에 우리가 환호하며, 하느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리이다.

<또는>

에페 5,2 참조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셨네.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놓으시어, 하느님께 향기로운 예물로 바치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의 은혜를 풍부히 내려 주시어 저희가 거행하는 이 신비를 그대로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 첫머리에서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헤로데가 죽이려고 하니 도망가시라고 합니다(루카 13,31 참조).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13,33)라고 하시면서 예루살렘에서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저는 이 복음 말씀을 읽을 때면 우리나라 신앙의 선조들, 특히 순교자들의 삶이 생각납니다. 순교자들은 신앙을 증언하면 반드시 혹독한 고문과 죽음이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그리스도의 길을 끝까지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목숨이 아까워서 도망갔을까요? 아니면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갔을까요? 그 길을 끝까지 걷는다는 것은 죽음을 뜻합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생각만 해도 무섭고 떨립니다.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죽음을 이겨 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그 죽음이 어떤 뜻을 지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죽음에서 도망치시지 않고, 당신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시면서 말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을 잘 걸어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길을 간다고 하면서 제 방식대로, 자신이 편한 대로 갈 때가 많습니다. 오늘 하루 자기가 편한 방식이 아닌 주님의 방식대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길을 따라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이찬우 다두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