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입당송
시편 38(37),22-23 참조
주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 저의 하느님, 저를 멀리하지 마소서. 주님, 제 구원의 힘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은총을 베푸시어 저희가 하느님을 합당히 섬기고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11,29-36
형제 여러분,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30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33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35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36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69(68),30-31.33-34.36-37(◎ 14ㄷ 참조)
◎ 주님, 당신의 크신 자애로 제게 응답하소서.
○ 가련한 저는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 하느님, 저를 도우시어 보호하소서. 하느님 이름을 노래로 찬양하리라. 감사 노래로 그분을 기리리라. ◎
○ 가난한 이들아, 보고 즐거워하여라. 하느님 찾는 이들아,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주님은 불쌍한 이의 간청을 들어 주시고, 사로잡힌 당신 백성을 멸시하지 않으신다. ◎
○ 하느님은 시온을 구하시고, 유다의 성읍들을 세우신다. 그들이 거기에 머물며 그곳을 차지하고, 그분 종들의 후손이 그 땅을 물려받아, 그분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곳에 살리라. ◎
복음 환호송
요한 8,31-32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깨달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네 친구를 부르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내 의지만으로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기꺼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만큼 했음에도…?’와 같은 보상 심리가 끊임없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내가 두 번 계산했으면 네가 한 번쯤 계산하길 바라고, 이만큼 도와줬으니 ‘감사하다’라는 말 정도는 한 번쯤 듣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 마음 아니던가. 애초에 우리는 상대방이 그런 고민을 하지 않도록 먼저 신경 쓰는 것을 두고, ‘인간 관계의 지혜’라고 일컫는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복음 말씀을 실천한다는 건 참 어려운 숙제다.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다름 아닌 하느님 당신께서 먼저 모범을 보이셨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주님께서는 정말로 보답을 바라지 않고 우리에게 모두 주셨다. 작은 피조물로서 차마 당신께 보답할 수 없는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들만(아들까지도!) 뽑아 주셨고, 그 삶을 두고 ‘행복한 삶’이라고 일컬으셨다. 그러니 우리도 먼저 걸어가신 하느님을 따라 한번 그 길을 걸어보지 않겠는가. 그렇게 살아갈 배경과 조건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웃이 있고, 우리에게는 그들을 도울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다. 작은 용기로 하느님의 길에 올라서서, 하느님께서 누리시는 행복을 시작해 보는 오늘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예물 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제물을 거룩한 제사로 받아들이시어 저희에게 주님의 자비를 가득히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6(15),11 참조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
<또는>
요한 6,57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살아 계신 아버지가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의 성사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에게 주님의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은 ‘빗자루 수사’로 널리 알려진 마르티노 데 포레스(1579-1639년) 성인의 기념일입니다. 성인은 리마의 로사(1586-1617년) 성녀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산 인물로서 그 지역에서 함께 큰 사랑을 받는 분입니다. 두 성인 모두 참회와 기도의 삶을 살았고 가난한 이와 병든 이들을 정성을 다하여 돌봄으로써 페루 사회사업의 기틀을 놓았지요.
에스파냐계의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리마의 로사는 1617년 선종한 뒤 1671년에 클레멘스 10세 교황께서 시성하시어 아메리카 대륙의 첫 번째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스파냐계 귀족 출신의 기사와 유색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나 혼혈에 사생아였던 마르티노는 1962년에 이르러서야 성 요한 23세 교황께 시성되었습니다. 그 또한 살아 있을 때 이미 성인으로 여겨졌고 사람들의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는데도 리마의 로사 성녀보다 삼백 년이나 뒤에 성인품에 올랐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루카 14,12)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그에게 보답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가 대가와 보답을 바라는 셈법이 아닌 순수한 사랑에 이끌리기를 바라셨기 때문이겠지요.
마르티노 성인의 시성이 리마의 로사 성녀보다 늦었다고 하여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교회 또한 세상이 기준으로 삼는 시각과 셈법에 길들여질 수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