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더보기
슬라이드배경

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미사
[녹]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38(37),22-23 참조
주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 저의 하느님, 저를 멀리하지 마소서. 주님, 제 구원의 힘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은총을 베푸시어 저희가 하느님을 합당히 섬기고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14,7-12
형제 여러분, 7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10 그런데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11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모두 나에게 무릎을 꿇고 모든 혀가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12 그러므로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한 일을 하느님께 사실대로 아뢰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7(26),1.4.13-14(◎ 13)
◎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
○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 ◎
○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 ◎
  복음 환호송
마태 11,28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 알렐루야.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10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은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말하곤 합니다.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이 용서하시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찬찬히 알려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오늘 복음의 주된 해석입니다. 다만 하느님의 자비가 단순히 우리의 일탈이나 어긋남을 용서하시고 받아 주시는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해석에 얼마간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늘 복음은 사실 죄인에게 투덜거리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들려준 예수님의 비유이야기입니다. 제 잘못을 알고 고치려 들고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는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정당함과 올바름을 굳게 믿고 있는, 그러므로 자신의 행동이 죄인과 다르다고 여겨 하느님의 자비란 게 필요가 없는 이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람의 잘못을 캐묻고 따지려 들면 한도 끝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인간의 잘못을 두고 너그러이 용서하시는 자상한 심판관이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짐짓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자비로운 사람이 되도록 초대하는 하느님의 간절한 부탁으로 읽혀야 합니다.
  예물 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제물을 거룩한 제사로 받아들이시어 저희에게 주님의 자비를 가득히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6(15),11 참조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

<또는>

요한 6,57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살아 계신 아버지가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의 성사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에게 주님의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로마 14,7-8). 주님의 사랑을 얼마나 깊이 느껴서 이렇게 고백할까요? 오늘 복음을 읽으며 하느님의 사랑을 헤아려 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투덜거리며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세리들과 죄인들을 받아들이시고 또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기도 하였습니다. 함께 식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친밀함의 표시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지혜 11,24)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비록 사람들 눈에는 손가락질을 받아 마땅해 보일지라도 창조주이신 아버지의 눈에는 모두 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당신의 자녀요 피조물입니다. 그들을 내치는 이들을 얼마나 못마땅해하셨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되찾은 양의 비유’로 하느님의 사랑 가득한 선하신 마음을 설명해 주십니다. 착한 목자의 선택은 사랑의 논리를 따릅니다. 그러나 경제 논리와 합리적 사고만을 따르는 이들이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참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체험이 없다면, 이런 종류의 기쁨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주님의 기쁨을 불편해하고 분노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불편과 분노를 가라앉히시려고 당신 사랑의 걸음을 멈추시지는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한결같은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