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체칠리아 성녀는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독실한 신앙인으로 자랐다. 성녀의 생몰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260년 무렵에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며, 박해 시대 내내 성녀에 대한 공경이 널리 전파되었다고 한다. ‘체칠리아’라는 말은 ‘천상의 백합’이라는 뜻으로, 배교의 강요를 물리치고 동정으로 순교한 성녀의 삶을 그대로 보여 준다. 흔히 비올라나 풍금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체칠리아 성녀는 음악인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입당송
보라, 이제 순결한 예물, 정결한 희생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을 따른다.
<또는>
복된 동정녀는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짊어져, 동정녀들의 신랑이며 순교자들의 임금이신 주님을 본받았네.
본기도
하느님, 복된 체칠리아를 기리며 해마다 기쁘게 지내게 하시니 교회가 전하는 그의 모범을 저희가 충실히 본받아 성자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선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 때문에 나는 큰 실망을 안고 죽어 가네.>
▥ 마카베오기 상권의 말씀입니다.6,1-13
그 무렵 1 안티오코스 임금은 내륙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페르시아에 있는 엘리마이스라는 성읍이
은과 금이 많기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2 그 성읍의 신전은 무척 부유하였다.
거기에는 마케도니아 임금 필리포스의 아들로서
그리스의 첫 임금이 된 알렉산드로스가 남겨 놓은
금 방패와 가슴받이 갑옷과 무기도 있었다.
3 안티오코스는 그 성읍으로 가서
그곳을 점령하고 약탈하려 하였으나,
그 계획이 성읍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바람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4 그들이 그와 맞서 싸우니 오히려 그가 달아나게 되었다.
그는 크게 실망하며 그곳을 떠나 바빌론으로 향하였다.
5 그런데 어떤 사람이 페르시아로 안티오코스를 찾아와서,
유다 땅으로 갔던 군대가 패배하였다고 보고하였다.
6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앞장서 나아갔던 리시아스가
유다인들 앞에서 패배하여 도망치고,
유다인들이 아군을 무찌르고 빼앗은 무기와 병사와 많은 전리품으로
더욱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7 또 유다인들이
안티오코스가 예루살렘 제단 위에 세웠던 역겨운 것을 부수어 버리고,
성소 둘레에 전처럼 높은 성벽을 쌓았으며,
그의 성읍인 벳 추르에도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다.
8 이 말을 들은 임금은 깜짝 놀라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던 대로 일이 되지 않아 실망한 나머지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웠다.
9 그는 계속되는 큰 실망 때문에 오랫동안 누워 있다가
마침내 죽음이 닥친 것을 느꼈다.
10 그래서 그는 자기 벗들을 모두 불러 놓고 말하였다.
“내 눈에서는 잠이 멀어지고 마음은 근심으로 무너져 내렸다네.
11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네.
‘도대체 내가 이 무슨 역경에 빠졌단 말인가?
내가 이 무슨 물살에 휘말렸단 말인가?
권력을 떨칠 때에는 나도 쓸모 있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는데 …….’
12 내가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이 이제 생각나네.
그곳에 있는 금은 기물들을 다 빼앗았을뿐더러,
까닭 없이 유다 주민들을 없애 버리려고 군대를 보냈던 거야.
13 그 때문에 나에게 불행이 닥쳤음을 깨달았네.
이제 나는 큰 실망을 안고 이국땅에서 죽어 가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2-3.4와 6.16과 19(◎ 15ㄷ 참조)
◎ 주님, 당신의 구원에 환호하오리다.
○ 주님, 제 마음 다하여 찬송하며, 당신의 기적들을 낱낱이 전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 찬미하나이다. ◎
○ 제 원수들이 뒤로 물러가고, 당신 앞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져 갔나이다. 당신은 민족들을 꾸짖으시고 악인을 없애셨으며, 그 이름을 영영 지워 버리셨나이다. ◎
○ 민족들은 자기네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지고, 자기네가 쳐 놓은 그물에 제 발이 걸리네. 가난한 이는 영원히 잊히지 않고, 가련한 이들의 희망은 영원토록 헛되지 않으리라. ◎
복음 환호송
2티모 1,10 참조
◎ 알렐루야.
○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27-40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호세 2,16.17ㄷㄹ.21-22)와 복음(마태 25,1-13)을 봉독할 수 있다.>
복음 묵상
사두가이들은 부활 신앙을 믿지 않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기록을 언급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던 예수님을 교묘하게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성경의 대목들을 언급하시면서 부활 신앙을 지혜롭게 증거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무신론적인 사고와 함께 또 다른 형태의 사두가이들을 많이 볼 수 있는 듯합니다. 세상은 우연히 생겨난 것일 뿐이고, 인간은 그저 진화의 산물일 뿐이라고 여기면서 하느님의 존재뿐만 아니라 세상의 초월성과 영원성을 부정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부활 신앙, 즉 내세의 영원한 생명을 부정한다는 것은 지금 현세의 삶이 전부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영원한 생명이 없다는, 현세가 전부라는 명제를 매우 직관적으로 깊이 있게, 그리고 끊임없이 통찰하다 보면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이 전부라는 그 상상의 끝자락은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을 모순과 부조리로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물 기도
주님, 일찍이 박해와 싸워 이긴 복된 체칠리아의 생명을 제물로 기꺼이 받아들이셨듯이 그를 기리며 드리는 이 예물도 어여삐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묵시 7,17 참조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을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성인들 가운데 복된 체칠리아에게 동정과 순교의 두 월계관을 함께 씌워 주셨으니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모든 악을 용감히 이겨 내고 마침내 천상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마카베오기 상권 1-4장에 나오는 역사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동방 원정에 나서 넓은 영토를 손에 쥡니다. 그는 열두 해를 다스린 뒤 부하 장군들에게 그 땅을 나누어 주고 죽습니다. 여기서 시작된 왕조의 후손 가운데 성전을 약탈하고, 이스라엘의 율법과 풍습을 금지하며 우상을 세운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유다 전쟁에서 계속된 패배 소식을 듣고는 실망하여 죽어 가는 임금입니다. 그에게서 우리는 악의 전형적 모습 한 가지를 발견합니다. 바로 남들도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힘으로 강요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다름과 자유를 존중하지 않고 마구 짓밟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의 사제 마타티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은 용감히 일어나 율법과 성전에 대한 열정으로 맞서 싸워 침략자들의 군대를 몰아냅니다. 비록 적은 수였지만 그들은 이집트를 치신 하느님의 놀라운 힘과 업적을 기억하고 의지하였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군대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움에 달렸다고 굳게 믿은 것이지요. 마타티아스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유다 마카베오는 전쟁에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듭하여 마침내 성전의 치욕을 벗겨 냅니다. 역겨운 우상의 제단을 허물고 율법의 규정대로 새로운 제단을 만들어 봉헌합니다.
자신의 힘과 군대만을 믿었다가 좌절하고 절망하여 죽음에 이르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와, 오직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며 외세를 몰아내고 성전을 정화하여 봉헌하는 유다 마카베오는 뚜렷이 대조되는 인물입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김동희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