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복음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우리는 오늘 첫 번째 순교자를 기억합니다. 순교의 선후를 따지는 것이 가당찮습니다만, 순교라는 말에 ‘첫 번째’라는 의미를 더하니 이 말은 더 멀게만 느껴집니다. ‘너희는 끌려가’ 증언할 것이다. 예수님의 저 말씀을, 첫 번째 순교자들은 울음이 섞여 떨리는 목소리로 전하고 마침내 뚝뚝 떨어지는 피로 적어 남겼습니다. 하지만, 총독과 임금이라는 말을 역사책을 보고서야 겨우 알아듣는 사람들은 첫 번째 순교자의 피 울음을 짐작할 뿐입니다. 그렇게, 오늘의 신앙인과 첫 순교자 사이는 너무나도 멀게만 보입니다.
신앙이 바뀐 걸까요. 신앙이 서 있는 자리가 바뀌었으므로, 신앙의 모습이 바뀐 게 아닐까요. 같은 이유로 신앙 언어가 품어 내는 말도 많이 달라진 듯합니다. 첫 번째 신앙인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말했지만,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하느님보다는 생태나 사회 참여와 같은 이야기를 더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한 말하기입니다. 첫 순교자들이 죽음을 마주하고 살았다면, 우리는 복잡한 세상 가운데에서 나아갈 길을 찾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말이 어제의 순교만큼 치열하나, 내일의 사람들에게는 낡고 식은 언어로 전달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끝까지 견디어 내며’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 증언될 겁니다. 시대를 닮은 얼굴로 다시 태어날 뿐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