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코린 1,26-31)와 복음(마태 13,44-46)을 봉독할 수 있다.>
복음 묵상
마르코 복음에서 우리는 자주 분노하시는 예수님을 마주한다. 그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사람들의 완고함에 대한 깊은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식일 규정을 최고 가치로 두었던 당시 유다 사회는, 율법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마음까지 굳게 닫아 버렸다. 고통받는 이를 돕는 것조차 안식일에는 금지되었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내밀어야 할 손마저 법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법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 산다. 삶의 숨결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일상이 관습과 제도에 가로막혀 버린다면, 그 관습과 제도는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오히려 인간을 옭아매기 시작하는 순간, 그 법은 이미 본래의 목적을 잃은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체계 안에서 인간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분노하시는 것이 어찌 이상하겠는가.
눈앞의 아픔을 보면서도 모른 척하게 만드는 종교, 사람의 생명보다 규정을 더 신성하게 여기는 신앙, 그 완고함의 구조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