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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미사
[백]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스콜라스티카 성녀는 480년 무렵 이탈리아 움브리아의 누르시아에서 태어났다. 성 베네딕토 아빠스의 누이동생인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토 성인이 세워 맡긴 여자 수도원의 첫 번째 수녀이자 원장으로 활동하였다. 성녀는 베네딕토 성인과 영적 담화를 나누며 수도 생활에 대한 많은 격려와 도움을 받았다. 오빠를 따라 몬테 카시노에 갔던 성녀는 그곳에서 547년 무렵 선종하였다.
  입당송
이 슬기롭고 지혜로운 동정녀는 등불을 밝혀 들고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갔네.

<또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얼마나 아름다운가! 주님의 화관, 영원한 동정의 화관을 받았네.
  본기도
주님, 복된 동정녀 스콜라스티카를 기억하며 비오니 그를 본받아 저희가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주님 사랑의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님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으니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8,22-23.27-30
그 무렵 22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가운데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23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27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28 그러나 주 저의 하느님, 당신 종의 기도와 간청을 돌아보시어,
오늘 당신 종이 당신 앞에서 드리는 이 부르짖음과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29 그리하여 당신의 눈을 뜨시고 밤낮으로 이 집을, 곧 당신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이곳을 살피시어,
당신 종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30 또한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부디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어 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84(83),3.4.5와 10.11(◎ 2)
◎ 만군의 주님, 당신 계신 곳 사랑하나이다!
○ 주님의 뜨락을 그리워하며, 이 영혼 여위어 가나이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이 몸과 이 마음 환성을 올리나이다. ◎
○ 당신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짓고, 제비도 둥지를 틀어, 거기에 새끼를 치나이다. 만군의 주님,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
○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당신 메시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
○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하느님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사옵니다. ◎
  복음 환호송
시편 119(118),36.29 참조
◎ 알렐루야.
○ 주 하느님, 당신 법에 제 마음 기울게 하소서. 자비로이 당신 가르침을 베푸소서.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13
그때에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아가 8,6-7)와 복음(루카 10,38-42)을 봉독할 수 있다.>
  복음 묵상
오늘 예수님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한가지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마음은 멀리 있다.” 그들은 율법과 전통을 잘 알고 철저히 지켰지만, 정작 하느님을 향한 마음과 이웃을 향한 사랑은 빠져 있었습니다. 손을 씻는 규칙이나 그릇을 정결히 하는 관습은 지켰지만, 사람의 고통 앞에서는 핑계를 찾아 외면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도 묻고 계십니다. “너의 신앙은 마음에서 시작되고 있니?” 종교적 행동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행동을 움직이는 마음이며 그에 따른 진정성과 사랑입니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신앙은 화려하거나 완벽한 외형이 아니라 정직한 마음, 열린 마음, 사랑하려는 마음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기도와 행동이 관습을 채우고, 관습대로 늘 하던 대로 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진심에서 흘러나오기를 바랍니다.
  예물 기도
주님, 복된 동정녀 스콜라스티카를 기리는 저희가 놀라우신 주님을 찬양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님 앞에 엎드려 청하오니 그의 공로를 기꺼워하셨듯이 저희가 바치는 제사도 기쁘게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마태 25,6 참조
보라, 신랑이 오신다. 주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가라.

<또는>

시편 27(26),4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천상 선물을 나누어 받고 비오니 저희가 복된 스콜라스티카를 본받아 예수님의 수난을 깊이 새기며 오로지 주님의 뜻만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한국인이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 가운데 ‘막말로’, ‘까놓고 말해서’, ‘인간적으로’, ‘솔직히’, ‘진짜’와 같은 말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표현들에는 아마도 꾸밈없이, 거짓 없이 마음을 털어놓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에서도 이런 ‘진심’이 통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 ‘진심’이라는 말에 잠시 머물러 봅니다. 진심! 진심이란 ‘참 진(眞)’, 곧 참된 마음, 거짓 없는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을 혼내신 까닭도, 바로 이 진심이 없이 규정에만 매달리는 행동과 태도를 비판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진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으로 오늘 독서를 읽어 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1열왕 8,23). 곧 참된 마음이란, 결국 마음을 다하는 ‘다할 진(盡)’의 진심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요? 하기야 참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어쩌다 한두 번의 마음가짐으로는 불가능함을, 우리는 이미 알면서도 너무 쉽게 잊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 진정 온 마음을 다하는 실천부터 시작해 보기로 결심하면 어떨까요? 반성할 때에는 바로 지금이 세상 최후의 심판 날인 듯이,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낄 때는 마치 내 몸이 아픈 것처럼 진심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 환호송에 대한 우리의 실천이 아닐까 합니다. “주 하느님, 당신 법에 제 마음 기울게 하소서. 자비로이 당신 가르침을 베푸소서.”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