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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미사
[백]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치릴로 성인과 메토디오 성인은 형제로, 그리스 테살로니카에서 태어나 튀르키예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육을 받았다. 두 형제는 후대에 ‘키릴’ 문자로 불리는 글자를 만들어 전례문들을 슬라브 말로 옮겼고, 체코 모라비아의 슬라브족에게 파견되어 복음을 전하며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로마로 돌아간 다음, 치릴로 성인은 수도 서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69년 무렵에 선종하였다. 메토디오 성인은 교황 특사로 모라비아에서 활동하다가 벨레흐라드에서 885년 무렵 선종하였다.
  입당송
이 성인들은 천상 진리를 영광스럽게 선포하여 하느님의 벗이 되었네.
  본기도
하느님, 복된 치릴로와 메토디오 형제를 통하여 슬라브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으니 저희 마음을 비추시어 하느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깨닫고 참되고 올바른 신앙을 고백하며 하느님 안에서 한 백성을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예로보암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2,26-32; 13,33-34
그 무렵 26 예로보암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쩌면 나라가 다윗 집안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27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집에 희생 제물을 바치러 올라갔다가,
자기들의 주군인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마음이 돌아가면,
나를 죽이고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돌아갈 것이다.’
28 그래서 임금은 궁리 끝에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29 그러고 나서 금송아지 하나는 베텔에 놓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
30 그런데 이 일이 죄가 되었다.
백성은 금송아지 앞에서 예배하러 베텔과 단까지 갔다.
31 임금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의 자손들이 아닌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32 예로보암은 여덟째 달 열닷샛날을 유다에서 지내는 축제처럼 축제일로 정하고,
제단 위에서 제물을 바쳤다.
이렇게 그는 베텔에서 자기가 만든 송아지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자기가 만든 산당의 사제들을 베텔에 세웠다.
13,33 예로보암은 그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고,
또다시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산당의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그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직무를 맡겨 산당의 사제가 될 수 있게 하였다.
34 예로보암 집안은 이런 일로 죄를 지어,
마침내 멸망하여 땅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6(105),6-7ㄱ.19-20.21-22(◎ 4ㄱ)
◎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 조상들처럼 저희도 죄를 지었나이다. 불의를 저지르고 악한 짓을 하였나이다. 저희 조상들은 이집트에서 당신의 기적들을 깨닫지 못하였나이다. ◎
○ 그들은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금붙이로 만든 우상에 경배하였네. 풀을 뜯는 소의 형상과 그들의 영광을 맞바꾸었네. ◎
○ 이집트에서 위대한 일을 하신 분,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을 잊었네. 함족 땅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갈대 바다에서 이루신 두려운 일들을 잊었네. ◎
  복음 환호송
마태 4,4
◎ 알렐루야.
○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 알렐루야.
  복음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10
1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2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3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4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7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8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9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10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사도 13,46-49)와 복음(루카 10,1-9)을 봉독할 수 있다.>
  복음 묵상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가량이 배불리 먹었다고 합니다. 제자들 손에 쥐어져 있던 아주 작은 것들로부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은 언제나 그렇게 우리 삶에 다가옵니다. 양으로만 보면 턱없이 부족해 보이지만, 예수님의 손에 올려지고, 감사의 기도가 더해 지고, 그것이 나누어질 때 비로소 기적의 자리가 됩니다. 처음에 있었던 것보다 다 먹고 남은 것이 더 많았습니다. 부족함처럼 보이던 것은 오히려 풍요로움으로 드러났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꼭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위해 내놓기에는 언제나 불충분해 보이기만 합니다. 봉사하기엔 시간도 부족하고, 형편도 넉넉지 않고, 무엇보다 마음이 지쳐 있습니다. ‘이 정도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겠지.’ 하고, ‘나는 형편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처음부터 내놓기를 포기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생각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에 있는 아주 작은 것들로부터 시작되며, 기적은 부족한 가운데서도 우리가 하느님 앞에 겨우 모아온 아주 작은 것들로부터 일어납니다. 감사하며 내어놓고, 서로를 위해 기꺼이 나눌 때, 우리의 삶 안에서도 조용한 기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예물 기도
주님, 복된 치릴로와 메토디오를 기리며 비오니 주님께 올리는 이 예물이 화해의 성사가 되게 하시고 저희가 새사람이 되어 주님 사랑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마르 16,20 참조
제자들은 떠나가서 복음을 선포하고, 주님은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표징으로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모든 민족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복된 치릴로와 메토디오를 기리는 저희가 한 분이신 성령 안에서 한 빵을 나누는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게 하셨으니 하느님의 수많은 자녀들이 한 믿음을 굳게 지켜 한마음으로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세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가량을 먹이신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주님의 거침없는 능력에 놀라고, 다시 한번 그 능력에 기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 복음 이야기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와 능력 자체를 크게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또한 그분께서는 신이셔서 가능하였을 것이라고 수긍합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지금의 ‘나’에게도 미친다는 사실, 곧 나도 그 사천 명 가운데 한 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먼저 군중의 배고픔을 알아채시지만 제자들은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마르 8,4)라고 대답합니다. 어쩌면 제자들의 반응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일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태도에서 믿음의 문턱이 생기는 듯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현실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은총은 곱셈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어놓을 때만, 주님의 은총이 곱해져 결실을 맺습니다. 우리 눈에 하찮아 보이는 작은 노력일지라도, 주님께서는 결코 무시하시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다시 말하여 0에는 무엇을 곱해도 결과가 0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오늘 하루, 우리도 결심해 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기도 한 번, 용서 한 번, 감사 한 번, 작지만 끈기 있는 그 시도들이 결국 일곱 바구니의 결실로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