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연중 제6주일
오늘의 전례
주님의 계명은 우리가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렇기에 계명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법조문의 준수와는 다릅니다. 주님에 대한 감사와 이웃에 대한 사랑을 기꺼이 실천하라고 말하는 사랑의 계명은 우리를 참된 행복으로 이끕니다. 생명의 길로 이끄는 주님의 계명을 깨닫고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면서 이 미사에 참여합시다.
입당송
시편 31(30),3-4 참조
하느님,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본기도
하느님, 바르고 진실한 마음 안에 머무르시겠다고 하셨으니 저희에게 풍성한 은총을 내리시어 하느님의 마땅한 거처가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주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불경하게 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15,15-20
15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
16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17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
18 참으로 주님의 지혜는 위대하니 그분께서는 능력이 넘치시고 모든 것을 보신다.
19 그분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굽어보시고
사람의 행위를 낱낱이 아신다.
20 그분께서는 아무에게도 불경하게 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고
어느 누구에게도 죄를 지으라고 허락하신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9(118),1-2.4-5.17-18.33-34(◎ 1 참조)
◎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행복하여라, 그분의 법을 따르는 이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이들! ◎
○ 당신은 규정을 내리시어, 어김없이 지키라 하셨나이다. 당신 법령을 지키도록, 저의 길을 굳건하게 하소서. ◎
○ 당신 종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제가 살아 당신 말씀 지키오리다. 제 눈을 열어 주소서. 당신의 놀라운 가르침 바라보리이다. ◎
○ 주님, 당신 법령의 길을 가르치소서. 저는 끝까지 그 길을 따르오리다. 저를 깨우치소서. 당신 가르침을 따르고, 마음을 다하여 지키오리다. ◎
제2독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지혜를 미리 정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2,6-10
형제 여러분, 6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8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9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마태 11,25 참조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과 달리,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7-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과 달리,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0-22ㄴ.27-28.33-34ㄴ.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다양한데, 오늘 복음처럼 단호함이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이 죄를 지으면 그 눈을 빼버리고, 손이 죄를 지으면 그 손을 잘라 버려야 된다고 결연하게 말씀하십니다.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여도 죄는 삶의 동반자처럼 늘 곁에 있습니다. 이를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니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반복해서 읽다 보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죄는 그리스어 하마르티아로 표현되는데, “표적을 빗나간, 길에서 벗어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길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고통이 따라옵니다. 게다가 하마르티아는 인간의 행위가 아닌 본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죄는 필연적으로 같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주는 고통과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우리를 위하여 단호하게 표현하십니다.
비록 단호하게 말씀하셨지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마태 18,22)고 하시며 죄에 빠진 사람들을 따뜻하게 끌어안으십니다.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시고, 죄에 빠져 있는 세리를 당신 품으로 맞아들이십니다.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죄에 빠져 있다면 하느님의 길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애쓰다 보면 온화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 소망해 봅니다.
보편지향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 주님의 지체인 교회를 이끌어 주시어, 힘없고 보잘것없는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게 하소서.
2. 공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정의로우신 주님, 공직자들에게 지혜와 사랑의 은총을 주시어, 그들이 자신의 사명을 올바로 깨닫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며,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게 하소서.
3.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희망이신 주님, 이웃과 사회의 무관심으로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이들을 굽어보시어,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시고, 그들이 주님께 의지하며 다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주님, 저희 가정 공동체를 굽어살피시어, 이 세상 모든 이를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주님의 자비를 깊이 깨닫고, 가정 안에서 주님의 참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예물 기도
주님, 이 제사로 저희를 깨끗하고 새롭게 하시어 저희가 주님의 뜻을 충실히 실천하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2 : 구원의 신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많은 인류를 가엾이 여기시어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시어 저희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78(77),29-30 참조
그들은 실컷 먹고 배불렀네. 주님이 그들의 바람을 채워 주셨네. 그들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으셨네.
<또는>
요한 3,16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영성체 후 묵상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39). 율법의 완성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이웃과 서로 사랑하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천상 진미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참생명을 주는 이 양식을 언제나 갈망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고속도로를 달리던 초보 운전자가 있었습니다. 정속 주행을 고집하던 그는, 앞에 가던 스포츠카가 빠르게 달려 나가자 갑자기 속도를 높여 따라붙었습니다. 옆자리 친구가 당황해하자 그는 말하였습니다. “앞차와 간격을 100미터로 유지하라고 배웠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규칙을 따르는 듯 보였지만, 통행 속도 제한이라는 법을 어긴 것입니다. 배운 대로 움직였을지 몰라도, 정작 주변 흐름과 안전이라는 근본 목적은 놓친 것이지요.
우리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규칙에 집착하면서 정작 그것이 왜 필요한지 잊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신학교 시절 전례부 활동을 하며 전례 규정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그런데 방학 때 본당에 가면 전례에 관하여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자꾸 눈에 들어왔습니다. ‘초를 왜 저렇게 켜지?’, ‘종은 저렇게 치는 게 아닌데 …….’ 주님을 위한 수단이던 규정이 어느새 주님을 가리는 장벽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켰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선자’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의로움은 사랑이라는 가장 큰 계명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까요.
차량 간 거리를 지키려다 과속한 운전자처럼, 형식에만 얽매이면 더 본질적인 계명을 놓치게 됩니다. 모든 규정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이 규칙을 이끄는 방향이고, 규칙은 사랑을 구체화하는 길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에 참되게 응답하는 삶이며, 우리를 자유와 기쁨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화답송)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