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복음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여행 중 우연히 들린 이탈리아 어느 작은 도시의 성당에서 백발의 할아버지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벌써 몇 시간째 고해소에 앉아 계신 듯했지만, 깊은 웃음으로 환대해 주셨습니다. 죄를 하나하나 고백할 때마다 “너무 아름다워! 훌륭해! 아주 달콤한 고백이야!” 이태리 사람 특유의 감탄사를 연신 쏟아 내셨습니다. 제 나약함과 비참함이 뭐가 그리 아름답고, 훌륭하고, 달콤하겠습니까. 내 얼굴에 씌워진 가면을 정직하게 마주보고, 가면을 벗은 맨얼굴을 용기 내어 보여 드렸을 때 하느님께서 나를 어떤 사랑의 온도로 바라보시는지, 신부님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예수님의 요청 앞에 전제가 붙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하느님 체험에 대한 기억에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빵을 떼실 때 그분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듯, 저마다 하느님 자비를 체험한 기억을 떠올리며 살도록 우리는 초대되었습니다. “기억”에 해당하는 라틴어 recordatio는 “마음, 심장”(cor)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기억이란, 그때 내 마음의 온도를 떠올리는 일, 그때 내 심장의 박동을 다시 느끼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억은 머리가 아닌 마음을 통과하는 일입니다. 속에서 타올랐던 그때의 그 뜨거운 마음(루카 24,32 참조)을 “기억”하길, “기억”하는 나로 인해 내 가까운 사람도 덩달아 하느님 자비를 체험할 수 있길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