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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 복음묵상
[백] 부활 제6주간 월요일
  복음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26─16,4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는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믿음이 너무 클 때 오히려 하느님의 뜻을 구하지 않게 됩니다. 확신이 과도할 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쉬이 적대하게 됩니다. 너무 큰 믿음에 하느님의 속내를 들을 자리가 사라지고, 지나친 자기 확신에 열린 생각, 선이 부드러운 공감, 비판적 자기 성찰의 공간이 제거됩니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자아가 만들어 내는 자기 합리화의 무한 꾀임에 빠져들고 맙니다. 
성령, 곧 보호자를 보내 주겠다 하십니다. 그리스어를 직역하면 “가까이 있도록 부름 받은 이”입니다. 한편 성령은 바람에도 비유됩니다.(요한 3,8 참조) 불고 싶은 데로 부는 바람,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자유로움 그 자체입니다. 종합해 보면 성령은 내 가까이 계시는 분, 그러면서 완전히 자유로우신 분입니다. 내가 찾기만 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지만, 내가 장악하려 들면 유유히 내 손을 빠져나가시는 분입니다. 영으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해 타인을 배척하고 배제하는 ‘투사’가 아니라, 자유로운 성령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려 내 생각의 목소리를 잠재운 채 침묵으로 들어가는 ‘은수자’입니다. 스콜라스티카 성녀가 “침묵하든지 혹은 하느님에 대해서만 말하라”고 권고하실 때 방점은 침묵에 놓여 있습니다. 침묵은 성령을 듣게 하며, 성령은 하느님과 타자와 나 자신과의 관계가 유연하도록 토닥여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