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더보기
슬라이드배경

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 복음묵상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복음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23ㄴ-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25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26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27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켠에 의문이 듭니다. 간절히 청했는데 받지 못한 이들은 왜 그런가. 어째서 그 사람은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는데 병은 낫지 않았고,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으며, 길은 끝내 열리지 않았는가. 어떤 기도는 오래도록 허공을 맴도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약속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초점이 ‘무엇이든’에만 있지 않습니다. 핵심은 ‘내 이름으로’입니다. 이 말은 기도 끝에 도장을 찍듯,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라는 말만 붙이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과 방식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라는 초대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에 ‘내 계획’을 들고 들어갑니다. 이미 결론을 정해 놓고, 그 결론을 하느님께 승인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은 내 욕망을 정당화하는 표어가 아니라, 내 욕망을 정화하는 자리입니다. 내 소원이 그대로 관철되는 대신, 내 소원이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가도록 다듬어지는 곳, 그래서 어떤 기도는 허락으로 응답되기 보다 침묵으로 응답되면서도 우리를 살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약속하시는 최종 목적은 소원 성취가 아니라 기쁨의 충만입니다. 우리 마음이 기쁨 중에 있다면, 이미 우리 기도는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겠습니다. 하느님은 때로 우리가 구한 것을 그대로 주시지 않고, 그보다 더 큰 것을 주십니다. 내가 원했던 것을 얻지 못해도 나를 잃지 않게 하시는 것, 내가 붙잡던 것을 내려놓고도 평화를 누리게 하시는 것, 그것은 ‘덜 받은’ 응답이 아니라, 어쩌면 ‘더 깊이 받은’ 응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