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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 복음묵상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복음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1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5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9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코린 1,18-25)와 복음(마태 5,13-19)을 봉독할 수 있다.>
  복음 묵상
“소작인들의 잔혹함”과 “주인의 무모함” 속에서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소작인들은 왜 이렇게 폭력적일까요? 또 주인은 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종들을 보내고 아들마저 보내어 죽게 만들까요? 소작인들의 잔혹함은 한편으로는 이해될 법도 합니다. 인간이 가진 무한의 욕심과 그것을 채우기 위해 발휘되는 수만 가지의 교묘한 처세술은 현실 중에서도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비유 말씀의 남은 한축, 곧 주인의 무모함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요? 
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거센 돌풍이 일어 물이 배에 가득 차, 거의 난파하기 직전이 되었는데도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웁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배의 키를 맡기고 주무신 것은 제자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도 나 자신을 믿지 못할 때 예수님은 나를 믿어 주십니다. 사실 예수님과 닮은 내 마음의 한 단면을 믿으시는 것이고, 내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믿으시는 것일 터입니다. 주인은 놓치지 않습니다. 소작인들의 잔혹함 한편에 하느님 모습대로 지어진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한 감수성을, 그들이 성령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을 바꿀 1% 가능성을, 주인은 거기에 모든 것을 겁니다.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한 그것, 어쩌면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의 크기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