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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 복음묵상
[녹]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복음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7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마태오 복음의 글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하다. 유다계 그리스도인에게 쓰여졌으므로 유다인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소개한 결과로 그렇다.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러므로 배타적이고 편협하다. 마태오가 그린 예수님은 유다인들에겐 친숙하나 이방인들에겐 냉혹하다. 왜일까. 
열두 사도를 파견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민족이나 국가, 그리고 집단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머문 이 세상은 그만큼 갈라져 있고 대립하며 긴장하는 곳이다. 마태오는 유다인과 이방인의 극단적 대립 한 가운데 예수님을 모셔놓고 고민했으리라. 유다인의 입장에서 이방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설득의 글을 쓸 것인지, 이방인의 입장에서 유다 사회의 완고함에 날카로운 비난의 글을 퍼부을 것인지. 
복음은 무릉도원의 글이 아니다. 일상의 익숙함과 편견 안에서 초월적인 하느님을 소개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라도, 그 익숙함과 편견의 자리를 애써 무시하지 않고 써 내려 간 마태오의 글은 너무 솔직하고 투명해서 정겹다. 초월과 보편의 하느님이 이렇게까지 인간적일 수 있을까 싶어, 마태오의 글이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