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복음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5-51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TV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란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으면 쉽게 채널을 돌리지 못합니다. 비춰지는 자연 풍경이, 마치 유럽의 저 알프스 산맥에서 마주하는 호수의 풍경처럼 아찔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상처받아 더 이상 세상을 보고 싶지 않아서, 혹은 내 부끄러움으로 더 이상 가족의 눈을 바라볼 용기가 없어서 자연인이 되기로 선택한 그들의 이야기는 내 마음에 기어코 무언가를 남기고야 맙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것, 또 보고 싶어도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 결코 너만의 경험일 수 없는 까닭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어는 “보다”입니다. 필립보는 의심하는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초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부터 그를 보고 계셨습니다. 내가 가서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지만 실은 하느님께서 나를 보아주신 게 먼저입니다. 중세의 신비가 니콜라우스 쿠사누스는 내가 하느님을 보는 시선과 하느님께서 나를 보는 시선이 서로 다른 두 시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내가 무언가를 볼 때마다 하느님께서 단 한 순간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사랑으로 나를 보고 계셨음을 떠올리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볼 마음이 차갑게 식거나 혹은 그럴 용기가 사라지는 일이 살아온 시간만큼 쌓여갑니다. 갈 곳 없는 나의 시선이 초조함과 불안함이 될 때, 늘 내게 고정되어 있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시선이 위로가 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