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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생활

Catholic Life

매일 복음묵상
[홍]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복음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시(詩)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김민정 시인은 “걱정하는 마음”이라 대답합니다. 감히 평가할 수는 없지만 삶과 죽음, 인간과 세상, 역사와 약자의 “환하고 아픈” 현실을 백색의 종이 위에 처연히 써 내려간 故 허수경 시인과 각별한 사이였다고 하니, 그 대답의 발원지를 짐작할 만도 합니다. 시는 걱정하는 마음, 폐허가 된 인간(나)의 마지막 남은 선한 마음에 기대어 내뱉는 절제된 호소, 말과 말을 버무리고 조형하는 가운데 끝내 내 살을 깎아내는 순교입니다. 시인의 마음이야말로 그래서, 창조주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좁은 문”(루카 13,24)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늠할 수조차 없는 창조의 위업이, 위태로이 서 있는 십자나무 앞에서 방향을 잃습니다. 창조의 결말이 십자가라면,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욥 3,3)이라 외치며 자신의 ‘창조’를 저주한 욥이 오히려 이성적입니다. 그러나 창조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일관된 섭리가 있다면 바로 하느님의 걱정하는 마음입니다. 창조가 하느님의 산문이라면, 십자가는 하느님의 시입니다. 시인이 걱정하는 마음을 말씨에 담고 벼르듯 최고의 시인인 하느님은 걱정하는 마음을 말씀이 사람이 되신 성자의 십자가에 고이 담아냅니다. 왜 한마디라도 더 말씀하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 시는 절제된 호소, 자기 순교의 미학(美學). 그렇다면 십자가라는 하느님의 시를 매일 곱씹고 음미하며,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걱정하는 마음을 발견하고 그에 공명하는 게 신앙인의 소명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