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57-62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57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티모 3,14-17)와 복음(마태 13,47-52)을 봉독할 수 있다.>
복음 묵상
예수님의 공간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자신의 공간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세상살이 자체가 하나의 순례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사실 삶은 상대적이다. 좌충우돌의 삶을 지나다 보면, 절대로라는 말마디를 쉼 없이 뱉어낸 시간들이 부끄럽기도 하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실은 한 발짝만 옆으로 옮겨 바라보면 부질없기 마련이다. 남는 건, 제 삶의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의 확장이다.
넓어지고 또 넓어지다 보면 굳이 요만큼, 여기까지의 공간은 필요치 않다. 하느님 나라 역시 그렇다. 내 것, 내 공간, 내 삶이 넓어지고 넓어져서 내 것, 네 것을 구분하는 일이 불필요하고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 그것이 하느님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경계가 조금씩 사라지는 만큼 이미 그 나라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