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복음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3-21
그때에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통제 욕구가 강한 성정을 타고났습니다. 시간도, 일도, 인간관계도, 심지어는 사물을 배치하는 방식도 강박적으로 통제하려 합니다.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라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한 그의 사정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집니다. 단순한 돈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상황이 통제되지 않고 있다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고, 흘러가는 상황이 내 생각의 질서를 따르지 않을 때, 그 어긋남의 틈새로 불안과 초조가 솟아오릅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인생의 역사』에서 ‘조심’이란 단어에 이끌립니다. “‘조(操)’라는 한자는 세 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왼편에는 손(手)이 있고, 오른편 아래에는 나무(木), 그 위에는 세 개의 입(口)이 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물론 그 내용을 전적으로 믿어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손으로 나무 위에 있는 새를 잡는’ 모양을 따른 글자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거기에 ‘심(心)’을 더한 ‘조심’의 뜻은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이 될 것이다. 손으로 새를 쥐다니, 과연 조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통제의 욕구를, 조심의 섬세함이 멈춰 세웁니다. 무엇이든 꽉 움켜쥐려는 본능을, 손으로 새를 쥐는 세심한 마음이 가로막습니다. 새를 너무 꽉 움켜쥐면 자칫 그의 목숨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생각과 계획을 나의 통제 욕구에 내맡기기 전에, 조심(操心)스러움으로 먼저 하느님의 생각과 계획을 묻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실 그분의 선한 뜻이 이미 내 삶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