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입당송
시편 105(104),3-4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자라나게 하시고 저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1,18ㄴ-26
형제 여러분, 18 가식으로 하든 진실로 하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니,
나는 그 일로 기뻐합니다.
사실 나는 앞으로도 기뻐할 것입니다.
19 여러분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도움으로
이 일이 나에게는 구원으로 끝나리라는 것을알기 때문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어떠한 경우에도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21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22 그러나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아야 한다면,
나에게는 그것도 보람된 일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24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
25 이러한 확신이 있기에,
여러분의 믿음이 깊어지고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내가 남아 여러분 모두의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26 그리하여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 가면,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할 거리가 나 때문에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2(41),2.3.5ㄱㄴㄷㄹ(◎ 3ㄱㄴ 참조)
◎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
○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
○ 영광의 초막, 하느님의 집까지, 환호와 찬미 소리 드높은 가운데, 축제의 무리와 행진하였나이다. ◎
복음 환호송
마태 11,29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 알렐루야.
복음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1.7-11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은근히 신경씁니다. 조금 더 인정받고 싶고, 조금 더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복음의 사람들도 잔치에 초대받아 저마다 윗자리를 고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단순히 자리를 양보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스스로를 높이려는 마음에서 한걸음 물러서 보라는 초대일 것입니다.
낮은 자리를 선택한다는 것은 나를 하찮게 여기는 일이 아닙니다. 굳이 나를 드러내지 않아도 괜찮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앞서가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내 가치를 사람들의 인정이나 자리에서 찾지 않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조금이라도 내가 높아지려 했던 자리에서 한걸음 물러서 보면 좋겠습니다. 나를 높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하느님께서는 이미 나를 알고 계십니다. 낮아지는 사람을 높여 주시는 분은 결국 하느님이십니다.
예물 기도
주님, 주님께 올리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가 바치는 제사가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20(19),6 참조
당신의 구원에 우리가 환호하며, 하느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리이다.
<또는>
에페 5,2 참조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셨네.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놓으시어, 하느님께 향기로운 예물로 바치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의 은혜를 풍부히 내려 주시어 저희가 거행하는 이 신비를 그대로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군종 신부로 지내면 성당에서뿐만 아니라 부대 안에서 이런저런 자리에 가야 하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회의나 공식 행사에서는 지정된 자리가 있어서 별 어려움이 없지만, 의무 교육을 듣는 시간에는 은근히 자리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강사나 교관이 너무 잘 보이는 앞자리에서 되도록 멀리, 그렇다고 너무 뒤에 앉으면 나중에 앞자리를 채우려고 앞으로 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 그러한 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앞에서 3분의 2 지점 정도의 자리가 인기 있습니다. 성당에도 암묵적으로 지정된 자리가 있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한번은 다른 본당 신자가 미사 때 와서 기존 신자가 평소 앉던 자리에 앉자, ‘내 자리’라며 다른 자리로 가라고 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정해진 것도 아닌데 괜히 서로 불편해지거나,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생깁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자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먼저 끝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윗자리에 앉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주요 인사로 초대받은 경우라면 차라리 윗자리 어디쯤에 가서 앉는 것이 주최 측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테지요.
다만 여기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겸손한 태도입니다. 나보다 더 이 자리에서 대접받을 자격을 갖춘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 나보다 잘난 사람이 많다는 것,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기꺼이 끝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으로서 기쁘게 축하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찾아 앉아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알고, 그렇게 하는 데에 망설이지 않을 용기와 겸손을 주님께 청해 봅니다.
(김영송 알베르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