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복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35-43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포르투갈 여행 중 파두 공연에서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합니다. 이 독특한 음악 장르는 대개 외부와 차단된 작은 식당 안에 무대를 마련합니다. 공간이 협소하니 마이크의 도움은 불필요합니다. 아니, 음악의 맛을 해칩니다. 파두(fado)는 낱말 자체가 ‘운명’, ‘숙명’을 뜻하는 라틴어 fatum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냉혹한 바다의 파도, 야속한 가난의 대물림, 좌절된 사랑, 그 슬픔, 그리움, 체념. 이 모든 서사가 가수의 떨리듯 갈라지는 목소리와 울음처럼 튕겨 나오는 기타의 선율로 표현됩니다. 한 맺힌 멜로디는 어느새 내 운명의 한(恨)이 되고, 토해 내듯 쏟아지는 감정의 크레센도는 곧 나의 해방이 됩니다. 그 처절한 슬픔과 기묘한 해방감 사이에서 나 자신을 잃고 발견합니다.
눈 먼 이의 부르짖음이 꼭 파두처럼 느껴집니다. 앞 못 보는 장애가 인도한 무정한 운명. 사회적 낙인, 무시와 경멸, 가난과 자기혐오. 길 안이 아니라 길가에 놓인 그의 자리는 결코 온전한 나 자신으로 설 수 없는 모진 운명의 좌표입니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그 자체로 해방입니다. 외치는 순간 몸에 피가 돌고, 그렇게 생각과 마음과 영이 자유를 얻습니다. 그제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제 그는 길 안으로 들어와 예수님을 따릅니다.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섭니다. 기도가 어려울 때, 마음이 답답할 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는 눈 먼 이의 ‘파두’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까닭입니다. 그 원초적 분출의 예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