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복음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묵상
처음 유학을 와 낯선 언어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식당에서 인자한 미소로 말을 걸어 주시던 어느 이탈리아 할아버지 주교님이 계셨습니다. 가끔 좋은 이탈리아어 표현들도 알려 주셨는데, 그중에서 ‘tuffarsi (다이빙하다)’란 표현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이빙대에 올라 마지막 발을 떼면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물속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중력에 온전히 몸을 맡길 뿐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나 자신을 완전히 내던지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과부의 헌금 이야기는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습니다. 구약에서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임금을 뽑으러 이사이의 아들들을 찾아갔을 때 “주님은 마음을 본다”는 말씀이 울려 퍼집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과부의 마음이 그리 궁금치 않으신가 봅니다. 그가 가진 생활비를 다 넣었다고만 말씀하실 뿐입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전 재산을 봉헌했다 해도, 행위 자체가 높이 살 만한 것이지 그 지향과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중요치 않다는 뜻인지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과부의 입장에서는 매일이 지독한 가난의 생존 게임, 곧 다이빙대입니다. 우리 삶도 매 순간 다이빙대에 서서 물로 뛰어들지 말지를 고민하는 시간의 연속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물속으로 나를 내던지기로 결정했다면, 중력에 내 몸을 맡기듯 성령의 이끄심에 나를 맡겨야 합니다. 어쩌면 다이빙대 위가 아니라 떨어지는 과정에서, 또 뛰어든 물속에서 주님의 뜻을 확인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