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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갈멜의 종은 울고 (대구가르멜여자수도원 60주년 감사미사 강론)
   2022/09/15  9:57

대구가르멜여자수도원 60주년 감사미사

 

2022. 09. 14(수) 성 십자가 현양축일

 

오늘 대구 가르멜 여자수도원 설립 60주년을 맞이하여 축하를 드리며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가르멜 수녀님들은 봉쇄 수도원 안에 살면서 기도와 고행과 노동으로 자신을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선익을 위해 봉헌하십니다. 특히 대구 가르멜 수녀님들이 저희 교구와 우리 사제들의 성화와 신자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아낌없이 바치신 데 대하여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우리 교구 제8대 교구장이셨던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의 87째 생신이기도 합니다. 작년 3월 14일에 하느님 나라에 가셨습니다만, 대주교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올 11월 30일이 되면 이 대주교님의 주교서품 50주년이 됩니다.

지난 달 27일에 윤공희 대주교님의 백수 감사미사가 있어서 광주에 다녀왔었습니다. 윤 대주교님께서는 1924년 생으로 한국 나이로 99세가 됨으로써 백수를 맞이하셨는데 한국 주교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문희 대주교님도 올해 살아계신다면 주교서품 50주년 잔치를 해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작년에 하느님께 가시는 바람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여튼 대주교님께서 하느님 나라에서 평안하시길 빕니다.

 

60년 전 우리 교구 제7대 교구장이셨던 서정길 요한 대주교님의 초청으로 오스트리아 마리아쩰 여자 가르멜 수도원에서 분가하여 대구에 여자 가르멜 수도원이 설립되게 된 것은 주님의 크신 은혜요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서대주교님께서 1950년대 말에 사목적으로, 또 재정적으로 유럽교회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당신의 병 치료를 위해서 장기간 유럽에 머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대구에 가르멜 수녀원을 설립하도록 확답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마리아쩰 가르멜 수도원’은 ‘빈 가르멜 수도원’으로부터 설립된 지가 6년 밖에 되지 않아 여력이 부족하였지만 서 대주교님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대구 가르멜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쩰 수녀님들은 대구 가르멜 설립 기금 마련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셨고 오스트리아 부인회의 도움과 많은 은인들의 도움을 받아 대구에 수녀원을 설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1961년 12월 30일에 엘리야 데레사 수녀님이 한국에 도착하시어 대구 남산동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에 기거하시면서 수녀원 건축공사를 직접 감독하셨다고 합니다. 엘리야 수녀님은 대구 가르멜 설립에 가장 공로가 크신 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년 전에 만 90세의 일기로 하느님 나라에 가셨습니다. 살아계실 때 저도 여러 번 뵈었습니다만 우리말도 잘 하시고 유머와 재치가 많아서 공동체를 활기 있게 만들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수녀원 건축 당시에 교구 청년들과 학생들이 자원 봉사도 많이 했었고, 특히 한솔 이효상 선생님께서 여러 가지로 도와주셨다고 합니다.

드디어 건물이 거의 다 되었기 때문에 1962년 9월 8일 성모님 탄생 축일에 한국에 오실 다섯 분의 수녀님들이 오스트리아에서 파견예식을 하고 한국으로 출발하였는데 9월 14일이 되어서야 일 년 전에 먼저 와 계셨던 엘리야 수녀님과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날 ‘성 십자가 현양축일’에 서정길 대주교님께서 수녀원을 축복하셨고 봉쇄문이 잠겨 졌으며 지원자 한 분을 포함한 7분의 수녀님들의 공동체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법적으로 가르멜 수녀원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종신서원을 한 6명의 수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설립자 6분 중에 유일한 한국 사람인 마리아 까리따스 수녀님은 대구에 가르멜이 설립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오지리 마이아쩰 가르멜에 입회하였다가 대구로 오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초창기에 환경 적응의 어려움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세분의 수녀님들이 본국으로 귀국하시게 되었고 그로인한 인원부족을 부산 가르멜에서 4분의 수녀님들을 보내주심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대구에 가르멜 수녀원이 설립되게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로 된 것이며 서정길 대주교님과 많은 수녀님들, 그리고 많은 은인들의 노력과 합심으로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대구 가르멜 수녀원은 설립된 지 34년 만인 1996년 5월 22일에 안동교구에 상주 가르멜 수녀원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리고 4년 전인 2018년 5월 19일에는 수녀원을 새로 짓고 성당을 새로 개축하여 봉헌식을 가졌습니다. 그때도 수녀님들의 기도와 수많은 은인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60년 동안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그분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제가 1981년 3월 19일에 사제품을 받고 4월 1일에 대덕성당 보좌신부로 첫 사목의 발을 내딛었는데, 그 당시 신상조 스테파노 주임신부님과 일주일씩 교대로 수녀원에 아침 미사를 집전하러 왔어야 했었습니다. 그때 제가 젊은 신부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은 시절이었는데, 가끔 미사 시간에 쫓겨 헐레벌떡 달려와서 숨을 헐떡이며 미사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1960년대 초창기 대구 가르멜 수녀원 사진을 보면 주위에 집이 거의 없는 허허벌판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솔 이효상 아길로 선생님의 ‘갈멜의 종은 울고’라는 시가 있는데 잠깐 읊어 보겠습니다. 설립 50주년 때도 읊어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옛날 초창기 수녀원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시입니다.

 

시냇물 촐랑이는 소리 밖에는

죽은 듯 적적한 초가을 저녁을

나는 나를 대면하여 앉았는데

 

매미가 운다.

한 놈이 우니 다른 놈도 다투어 운다.

무엇이 슬퍼서가 아니라 생의 찬미가다.

 

수녀들은 제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겠구나.

천사처럼 아름다운 그녀들의,

나는 새와 달 밖에 보지 않는 그녀들의

그윽한 아베마리아 소리가 메아리친다면

그 여운 따라서 내게도 소리가 날까?

 

세상을 버리고

육친을 버리고 다시 청춘을 불살아 버리고

평생을 그리스도와 사랑으로 대결하는

그녀들 가슴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감히 얼굴을 들 수 없는 나를 대면하여 앉았는데

 

갈멜의 종은 울고

아울러 매미는 다시 다투어 울고

네게는 그래도 아무 소리도 손길도 없고

그러므로 나는 차라리 괘씸하게 생각되는

나를 대면하여 앉았는데

또 갈멜의 종은 울고.

 

오늘은 ‘성 십자가 현양축일’입니다. 60년 전에 수녀원 설립일을 왜 이 날짜에 잡았는지 잘 모릅니다만, 수녀님들이 기도와 희생과 자기 봉헌으로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 구원의 십자가가 되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불 뱀에 물려서 죽게 될 때 장대에 매달린 구리 뱀을 쳐다봄으로써 죽지 않게 되었듯이, 우리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린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써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요한복음 3,16 이 말씀이 복음 전체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글자 그대로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오늘날 부조리와 불목과 불신의 세상을 살면 우리 모두는 가르멜 산의 엘리야 예언자처럼 하느님의 사랑으로 불타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하여 이 세상에 믿음을 심고 구원의 십자가를 높이 들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아멘.”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