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친교와 공감 (5대리구 2지역 친교의 해 지역방문 미사 강론) |
2024/02/05 14:18 |
5대리구 2지역 친교의 해 지역방문 미사
2024. 02. 01. 연중 제4주간 목요일, 도량성당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를 맞이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우리 고유의 설날은 아직 열흘이나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도 새해 인사를 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 2024년 새해에도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예전에 제가 형곡본당에 있을 때 도량본당이 설립되었습니다. 박수태 신부님이 이 성당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형곡본당의 많은 신자들이 이곳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그 사람들을 놀린다고, ‘도랑 건너 무엇이 좋다고 자꾸 이사를 가느냐’고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생각하니 도랑이 아니라, 도량이 넓은 분들이 사는 곳이 이곳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교구는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10년 장기사목계획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친교의 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교가 작년부터 매월 첫 목요일에 대리구의 한 지역을 방문하여 신부님들과 간담회를 가지고, 신자들과 함께 미사와 성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오늘은 5대리구 2지역 차례로 이곳 도량성당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미사 전에 신부님들과의 간담회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들 코로나 이후에 본당을 활성화하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친교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이고 공동체이기 때문에 친교를 이루지 않는 교회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 가톨릭교회는 시노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제16차 세계 주교 시노드’를 말하는 것인데, 2021년 10월에 개막하여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세계 주교 시노드의 특이한 점은 본회의를 하기 전에 세계의 모든 본당과 교구와 나라와 대륙에서 시노드 주제에 대한 논의를 미리 가지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래로부터, 즉 모든 백성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종합하여 대의원들이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경청과 식별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이번 시노드의 또 하나의 달라진 점은 시노드 대의원에 주교님들만이 아니라 남녀 수도회 대표들과 수십 명의 평신도 대표들도 대의원에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10월에 이어 내년 10월에 시노드 본회의 제2회기를 가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시노드는 장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시노드의 주제가 ‘시노드적인 교회를 위하여-친교, 사명, 참여’입니다. 시노드의 주제가 시노드인 셈입니다. ‘시노드’란 말은 ‘함께 길을 가는 여정, 즉 함께 길을 간다’는 뜻입니다. 우리 교구가 현재 ‘친교의 해’를 살고 있는데, 지금 진행되는 시노드의 주제와 잘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시노드적인 교회가 되고 친교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미래에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 모두가 먼저 시노드적이고 친교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우리 공동체가 시노드적인 공동체가 되고 친교적인 공동체가 되도록 다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런 ‘시노드’라든가 ‘친교의 해’라든가 하는 것이 한때 논의되었던 하나의 행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앞으로 교회의 일상이 되어야 하고, 우리 삶의 일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로 열왕기 상권 말씀(2,1-4.10-12)을 들었습니다. 다윗 왕이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기는 내용입니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너는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
솔로몬은 다윗왕과 밧세바 사이에서 난 아들입니다. 아시다시피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라 하여 처음에는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궁궐과 성전을 크고 화려하게 짓는 바람에 백성들이 부역과 세금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방인 여성을 후궁으로 맞이하는 바람에 하느님으로부터도 멀어져갔습니다. 결국 솔로몬 왕이 죽고 난 뒤에는 불만을 품었던 북쪽 지역의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리하여 나라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갈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이 사례는 지도자의 역할과 처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이나 사제생활도 초심을 유지하지 않으면 세상의 유혹이나 자신의 교만과 나태함에 빠져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TV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을 보십니까?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이 고려를 26년 동안 3차례에 걸쳐서 침략하는데, 당시 힘이 약했던 고려가 그것을 어떻게 막아내고 나라를 구하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드라마를 보면, 왕(현종)은 정말 나라를 생각하는데, 왕비와 대부분의 신하들은 나라보다는 자신과 자기 가문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갈등과 암투가 끊이지 않습니다. 임금 외에 오로지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은 강감찬과 한두 사람의 신하들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임금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습니까! 임금 현종은 사사건건 자신에게 반대했던 신하를 내치지 않고 곁에 두면서 자신을 성군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친교’라는 것은 자기 좋을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싫어도 함께 하는 것이고 자신의 시간과 재물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야 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편의주의가 만연해 있는 세상에서 친교의 마음과 자세는 참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마르 6,7-13)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둘씩 짝지어 파견하시는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선포하며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이어오는 30절 이하를 보면, 파견되었던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님께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자.’하며 배를 타고 외딴곳에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와 다다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 같은 그들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쉬지도 못하시고 그들을 또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는 기적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는 것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드셨다는 것이고, 공감(共感)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공감이란, 말 그대로 느낌을 같이 하는 것이며,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공감’을 말하는 영어 단어 ‘compathy’도 고통이나 슬픔을 함께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진정한 친교의 마음이요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모든 공동체, 즉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 우리나라가 친교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으로 친교의 사람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