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대명본당 50주년 감사미사 강론) |
2023/08/28 15:41 |
대명본당 50주년 감사미사
2023. 08. 27. 연중 제21주일
먼저 대명본당 50주년을 축하드리며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제가 2008년 6월 1일에 견진성사를 드리기 위해 대명성당을 방문하였던 것으로 아는데 15년 만에 방문한 것 같습니다.
본당 약사를 보니까, 대명본당이 1961년 12월 25일부터 준본당으로 있다가 1973년 8월 19일에 본당 승격과 함께 성전 봉헌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8월 19일이 본당 설립일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여러 가지의 전시회와 음악회, 그리고 어제는 홈커밍데이 행사를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50주년은 대단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50년이 되는 것을 ‘희년’이라고 하였는데, 글자 그대로 ‘기쁜 해’를 말하는 것입니다. 7일마다 안식일을 지내고 7년마다 안식년을 지내며 안식년이 일곱 번 돌고 난 다음 해가 50년이 되는 것입니다. 50년, 즉 희년이 되면 노예를 해방하고 빚진 것을 탕감하며 모든 것을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려 주었던 것입니다. 가난이 되물림 되지 않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더라.’ 고 하신, 그 모습 그대로 다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50년 희년이 되면 그 희년의 정신을 새롭게 가지며 그 정신으로 살기로 다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구광역시에서 동네 중에서 대명동이 제일 크지 않나 생각됩니다. 제가 42년 전에 대덕성당에서 신상조 신부님 계실 때 보좌신부로 사제생활을 시작하였는데, 대덕성당, 소화성당, 성토마스성당도 대명동에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명본당이 중심에서 자리를 잡고 역할을 잘해 왔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지난 50년의 세월 동안 본당 발전과 지역 사회 복음화를 위해 헌신해 오셨던 역대 본당 신부님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교우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대명본당은 설립될 때부터 성 베네딕토 수도원의 신부님들께서 사목하셨는데 이 기회에 특별히 아빠스님과 수도회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마태 16,13-20)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가셨다고 합니다.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은 어떤 곳이냐 하면, 저도 예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만, 갈릴레아 지방 북쪽에 있는 영토로서 물이 늘 흐르고 농사가 잘 되는 풍요로운 곳입니다.
헤로데 대왕이 죽기 전에 아들들에게 땅을 나누어주었는데 아들 필리포스에게 물려준 땅이 이곳입니다. 필리포스는 이곳에다 자기 궁궐을 만들었고 판테온 신전까지 만들었던 것입니다. ‘판테온’은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을 말합니다. 판테온이라고 하면 로마 시내에 있는 판테온이 가장 잘 지어졌고 유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신전이었는데 7세기부터 가톨릭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광객들이 하도 많이 오니까 미사는 제대로 올려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예수님께서 판테온 신전이 있는 그런 곳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나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라고 합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오늘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신이 있습니다. 인도에 가면 신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도 참 많습니다. 자기가 ‘재림 예수’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워서 많은 사람들을 모우고 부흥을 시키다가 잘못을 저지르고 감옥에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런 사이비 종교에 넘어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런 것 때문에 오늘날 전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국가 통계를 보면 종교가 없는 사람들, 무신론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그리고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보고 있는가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주님이시라고 믿고 고백했기 때문에 세례를 받았고 견진을 받았습니다. 그렇지요?
사실 그때만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는 매일 기도를 통하여, 미사를 통하여, 신앙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고 고백하는 사람을 무엇이라 합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크리스찬’이라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공동체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불린 이유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만이 아니라 뭔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뭔가 바르고 선한 삶을 사는 모습이 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떤 면에서 다릅니까? 하느님을 믿으며 성당 다니는 것 말고 무엇이 다른 점이 있습니까?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시며 베드로를 축복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고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그런 사람을 당신 제자로 부르시고 ‘베드로’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주시면서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위에 세워진 교회는 많은 박해를 받았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쿼바디스’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벤허’, ‘십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영화입니다. 옛날에 성탄이나 부활 즈음에 TV명화극장에서 자주 했던 영화입니다.
‘쿼바디스’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의 ‘시엔키에비치’라는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영화 내용은 베드로 사도께서 선교하는 로마교회에 대한 로마제국의 박해 이야기입니다. 거기에다가 어떤 남녀의 로맨스를 가미한 것이지요. ‘벤허’도 마찬가지입니다. 벤허라는 사람을 통하여 예수님의 생애를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쿼바디스’라는 말은 ‘쿼바디스 도미네’라는 말을 줄인 것인데, 그 뜻은 ‘주님, 어디 가십니까?’라는 말입니다. 네로 황제의 박해가 하도 심해서 신자들이 베드로 사도를 설득하여 몰래 로마 밖으로 피신시킵니다. 그런데 어두운 저 앞에서 어떤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이 오는데 보니까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쿼바디스 도미네,’ 즉 ‘주님, 어디 가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러 로마로 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다시 발길을 돌려 신자들이 죽어가고 있는 로마로 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그것도 꺼꾸로 매달려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게 박해를 했던 로마 제국이 몇 년 후에는 거의가 하느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저승의 세력도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도들이 전해준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회의 전승을 믿으며 수많은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빛나는 증거에 힘입어 우리의 신앙을 다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이 오늘의 교회입니다. 수많은 종교와 무신론과 사이비까지 설쳐대는 오늘날 이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우리 신앙의 정체성을 바르게 가지며 살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시고 으뜸이신 성모님께서 저희를 도와주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