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또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교구청 시무미사 강론) |
2024/01/04 9:58 |
교구청 시무미사
2024년 1월 2일 9시30분 꾸르실료 교육관 경당
2024년 새해를 맞이하여 교구청 시무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전쟁 중이기에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동양에서는 용의 해를 맞았고, 우리 교구에서는 10년장기사목계획에 따른 친교의 해 2년차를 지내고 있습니다.
송년회를 할 때 어떤 분이 건배제의를 하는데요. 물론 요즘은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습니다만. 술잔을 들고 ‘이것은 무엇입니까?’하고 묻습니다. ‘술입니다.’ 대답을 하니, ‘그런데 담겨있는 의미를 생각할 때 이것은 무엇입니까?’하면 미리 약속된 대답으로 ‘사랑입니다.’하고선 건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번쯤 들어보셨지요? 사실은 하느님이 사랑입니다. 성부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성부와 성자께서 주고받는 사랑이 뭉쳐 위격이 되신 성령하느님도 사랑이시고, 성자도 우리 구원을 위하여 강생하시고 수난하셨으니 사랑이십니다.
이렇게 정체성과 더 깊은 의미에 대한 질문이 오늘 복음에도 등장합니다. 요한이 요르단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세례를 주고 있을 때,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보내어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요한은 고백하기를,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합니다. ‘그러면 엘리아요?’하고 또 묻자 ‘아니오.’라고 답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을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하고 묻습니다. 이에 세례자 요한은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라고 답변합니다. ‘당신은 누구요?’라고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요한이오.’가 적당한 답일 것입니다. 더 깊은 의미에 대해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라고 물었을 때,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라고 답한 것입니다.
우리도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이 있고 세례명도 있고, 직책도 있고, 직무도 정해져 있습니다. 덧붙여 우리에게는 신자로 살아가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시니, 하느님과 사랑의 관계 속에 있는 신자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됩니다. 신자로서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받을 존재>임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노래도 있습디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요. 올해에는 잠자리에서 눈 뜨자마자 예수님 목소리로 <000, 사랑합니다.> 한 번 해볼까요? 대답으로 예수님께 <예수님 사랑합니다.> 거듭 거듭 되새기며 하루를 시작하면 아주 좋겠습니다.
네. 더나가 친교의 해 둘째 해를 지내는 올해는 <하느님과 사랑과 친교의 관계>를 좀 더 깊이 하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사랑받는 것에 끝나지 않고, 이웃과 피조물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사랑의 손길의 역할, 하느님 사랑의 사도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람마다 당신 사랑을 샘솟게 해 주시는데, 샘은 계속 퍼내지 않으면 물이 솟아나지 않아 썩게 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 사랑을 받는 족족 몽땅 퍼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텅 빈 곳간, 파산, 부도 이렇게 될 것이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메마르지 않고 모자라지 않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계속해서 나눠도 괜찮습니다. 하느님께서 넉넉하게 샘물을 채워주실 것이고 필요하면 자동펌프를 달아서라도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2024년 올해는 하느님과 친교를 바탕으로 이웃과 친교, 피조물과 친교를 살아가되, 하느님께서 풍성히 채워주실 것을 믿고, 아낌없이 사랑하고 나누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