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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희망과 평화의 종소리가 되기를! (계산성당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및 종 축복식 강론)
   2023/08/17  9:9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및 종 축복식

 

2023. 08. 15. 주교좌 계산성당

 

오늘은 성모승천대축일이며 광복절입니다. 이 기쁜 날 우리는 미사 시작 전에 주교좌계산성당의 새 종각 종과 음악 종을 축복하였습니다. 두 개의 종각 종 중의 하나는 초대 교구장이신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을 기리는 힐데가르드 종이고, 다른 하나는 초대 계산본당 주임이신 김보록 로베르 신부님을 기리는 아우구스티노 종으로 명명하였습니다. 종을 봉헌하신 노성균 아우구스티노 총회장님과 손순란 힐데가르드 부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교우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종 봉헌에 요한 보스코 주교님과 계산본당 출신의 여러 신부님들께서도 동참하셨습니다.

 

지금까지 계산성당에 종 축복식이 세 번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1898년 12월 25일 한옥성당을 봉헌할 때 종을 축복하였다는 기록이 로베르 신부님의 서한에 나옵니다. 그런데 그 한옥성당이 안타깝게도 1901년 2월 4일 밤에 화재로 인해 불타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 지은 성당이 지금의 고딕형의 이 성당인 것입니다. 1911년에 대구교구가 설정된 후 1918년과 19년에 제단과 양 날개 부분을 증축하였습니다만, 현 계산성당 봉헌은 1903년 11월 1일에 뮈텔 주교님이 축성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올해는 계산성당 봉헌 120주년이 되는 해라 할 수 있습니다.

뮈텔 주교님의 1904년 연례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해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에 대구성당을 축성하고 종을 축복하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때 축복한 종이 우리가 알고 있는 ‘아오스딩, 젤마나 종’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오스딩은 서상돈 회장님의 세례명이고, 젤마나는 정규옥 회장님의 부인의 세례명입니다.

그리고 뮈텔 주교님의 일기를 보면 1909년 6월 29일에 대구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견진성사를 주었으며 종을 축복하였는데, 그 종은 레오와 아폴로니아 성인에게 봉헌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기존의 종각 종을 내리고 새 종을 다는 작업을 시작하여야 하는데 종각 종을 내리면 봉헌된 성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100년 이상 울렸던 두 종은 새로 꾸며질 교구청 역사관에 전시될 것입니다.

하여튼 제가 조사한 바로는 그동안 계산성당에 세 번의 종 축복이 있었고, 1909년에 축복한 것이 마지막 축복이었다면, 오늘 우리는 114년 만에 계산성당 종 축복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교회 역사에 있어서 성당에 언제부터 종각을 세우고 종을 매달았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종을 울렸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상당히 오래되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우리 어릴 때는 성당마다 종이 있었고 종을 울렸습니다. 유럽에 가면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도 그렇고, 대부분의 오래된 성당들이 지금도 종을 울립니다. 그것도 30분마다, 혹은 15분마다 종을 울리는 데도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몇 군데 성당만 종을 치지 싶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주교좌계산성당인데 아마도 120년 이상 매일 울렸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은 삼종기도 시간을 알리는 뜻으로 하루 세 번 울리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밀레를 아시지요? 밀레의 작품 중에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만종이란 ‘저녁 종’이라는 말인데, 다시 말하면 ‘저녁 삼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림을 보면 들판에 해가 질 무렵에 저 멀리 마을 성당이 보이는데, 어느 부부가 일하다가 말고 손을 모우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종소리도, 기도 소리도 들리지는 않지만, 그 그림을 보면 즉시 ‘아, 이 부부가 일하다가 저녁 삼종기도를 바치고 있구나’하고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종은 예전부터 우리 신앙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성물과 같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일본 강점기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이며,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승천대축일에 새로운 종을 축복하게 된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고 하겠습니다. 78년 전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날 계산성당의 종을 비롯하여 전국의 수많은 종들이 울렸을 것입니다.

1945년 8월 6일에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3일 후인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습니다. 그 폭탄 두 방으로 일본 왕이 8월 15일 항복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발표를 듣고 일본 국민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였을 것이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장롱에 감춰두었던 태극기를 손에 들고 길거리에 나와 흔들며 모두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날 나가사키 의과대학에 있던 나가이 다카시 박사도 피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돌아가실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호대를 꾸려서 사상자들을 돌보다가 뒤늦게 자기 집으로 갔더니, 집은 새카맣게 다 타버렸고 부엌에 부인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과 그 옆에 타다 남은 묵주 쇠고리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바케스에 담아 마을 뒤에 있는 공동묘지에 가서 묻었습니다. 박사한테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었는데, 마침 방학이라 시골 할머니 집에 가 있었기 때문에 원자폭탄의 화를 피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나가사키 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 우라카미 성당입니다. 대성당 옆에 소성당이 있는데 그곳에는 원자폭탄에 타다 남은 성모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체조배를 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언덕 위에 있는 우라카미 성당 왼편에 작은 천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콘크리트로 된 성당 종각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 쓰러져 있습니다. 원자폭탄에 의해 파괴된 옛 성당의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글 중에 ‘나가사키의 종’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원자폭탄을 맞은 나가사키의 참상을 말하며 평화를 외치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책에는 우라카미 성당의 수많은 희생자들을 위한 장례미사에서 다카시 박사가 했던 조사가 들어 있습니다. 한 20여 년 전에 이문희 대주교님을 모시고 교구 평신도 임원들과 함께 나가사키 성지순례를 갔을 때 버스 안에서 이 대주교님께서 그 조사를 읽어주셨던 기억이 나는데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조사의 요점은 한마디로 말해서 희생된 우라카미 신자들이 전쟁 종식과 세계 평화를 위해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쳐졌다는 것입니다.

책 제목이 ‘나가사키의 종’인데 그것은 우라카미 성당의 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래 두 개의 종인데 하나는 파괴가 되었고 하나는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종과 함께 살아남은 신자들이 종각을 세우고 그 종을 다시 매달았습니다. 책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종이 울린다. 폐허가 된 성당에서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원자 벌판에 울려 퍼진다. 이 치타로 씨가 청년들과 함께 벽돌 밑에서 찾아낸 종은 50미터 높이의 종탑에서 떨어졌는데도 상처 하나 없었다. 크리스마스 저녁에 겨우 종을 매달았고 청년들이 아침, 점심, 저녁에 종을 울렸다. 예전의 그리운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원자 벌판에 다시 울려 퍼진 그 종소리는 희망과 평화의 노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축복한 새 종의 타종식이 9월 2일에 있을 예정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혼란스럽고 험난한 이 세상에 새롭게 울려 퍼지는 희망과 평화의 종소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교구 주보 5면에 드망즈 주교 일기가 연재되고 있는데 요즘은 1914년 8월의 일기가 실리고 있습니다. 1914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해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던 프랑스 선교사들이 징집되었는데, 드망즈 주교님을 비롯하여 징집 통지서를 받은 신부님들이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로 갔다가 중국 상해를 거쳐 홍콩으로 가는 이야기가 최근 주보에 실리고 있습니다. 당시 안 주교님의 연세가 39였기 때문에 징집 대상자가 되었지만, 다행히 홍콩까지 갔다가 어떤 사람은 징집 연기를 받고, 그리고 안 주교님은 징집 유예를 받아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그 당시 안 주교님과 신부님들이 전쟁에 나갔다가 혹시 돌아오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정말 아찔합니다.

그런 전쟁이 지금 21세기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2년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 중재를 시도하셨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 중국과 대만, 남한과 북한의 대치 상황은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평화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에 그 영혼과 육신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승천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큰 희망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께서는 오늘 제2독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22)

오늘 복음(루카 1,39-56)은 성모님께서 세례자 요한의 모친 엘리사벳을 방문하였는데, 엘리사벳의 환대를 받고 하느님의 자비를 찬양하는 마리아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 노래에 나오듯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오늘날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처지를 굽어보시고 평화의 선물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와 우리나라와 세계평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