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협력자들과 함께 하는 사목 (사제피정 파견미사 강론) |
2023/09/26 10:34 |
사제피정 파견미사
2023. 09. 22.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저는 한 달에 한 번꼴로 한티에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주일 오후에 와서 월요일 하루 쉬고 내려갑니다. 한티에 오게 되면 대체로 순교자 무덤을 1번에서 37번까지 한 바퀴 돕니다. 제가 무슨 신심이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운동도 할 겸 묵주를 들고 그냥 무덤을 한 바퀴 도는 겁니다.
한티의 순교자들은 이 산골짜기에 모여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붙잡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던 분들입니다. 그냥 평범하게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면 될 텐데 굳이 이 먹을 것 하나 없는 곳에 들어와서 살아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은 신앙을 알았고 하느님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번 피정 말씀의 주제인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발견하고 전 존재를 던져 그 밭을 산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바오로 사도나 티모테오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티모테오’는 바오로 사도 제자로서 바오로 사도가 아들처럼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티모테오는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전수 받은, 진실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선교 여행 때 자주 티모테오를 데리고 다녔는데, 그런 티모테오에게 어떤 교회를 맡겼으니 얼마나 마음이 쓰였겠습니까! 여기에서 티모테오 1서와 2서가 탄생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티모테오 1서와 2서, 그리고 티토서는 원로 사목자가 젊은 사목자한테 보내는 지침을 담고 있기 때문에 ‘사목서간’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래서 주로 교회 지도자와 봉사자의 자격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잘못된 믿음, 잘못된 표양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하여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누구든지 다른 교리를 가르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과 신심에 부합되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그는 교만해져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논쟁과 설전에 병적인 열정을 쏟습니다.”(1티모 6,2-4)
지난 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경기도 용인에 있는 수원교구 영성교육원에서 있었던 ‘주교영성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주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최근에 어떤 환속 사제가 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보지 못했습니다만, 내용은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사이비종교다.’ 등등이라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여러 주교님들이 ‘어떻게 한동안 사제로 살았던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 하며 놀라워하였습니다. 그 환속 사제는 20여 년 동안 어느 교구에서 사제생활을 하였는데 어떤 잘못이 있어 면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새 주교님이 새 교구장이 되니까 찾아와서 면직을 풀어달라고 청하였고, 거절당하자 환속하여 그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때 한 원로 주교님께서 말씀하시길,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일은 지난 2000년 가톨릭교회 역사 안에서 늘 있어왔던 일입니다.”고 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오늘 독서에서 이렇게 또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것에서부터 시기와 분쟁과 중상과 못된 의심과 끊임없는 알력이 나와, 정신이 썩고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에 번져 갑니다. 그들은 신심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4-5)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일들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소송에 휘말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하고,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피정 지도하신 최시영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목표점, 준거점을 분명히 알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8,1-3)을 보면, 예수님께서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복음을 전하셨는데, 거기에는 열두 제자들과 몇몇 여자들도 함께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 등의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열두 제자나 몇몇 여자들은 오늘날 교회로 치면 교회 간부들 내지 봉사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본당신부라면 이 사람들은 사목회 임원들인 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다니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본당에 사목평의회가 있고 재무평의회가 있는 것을 본당신부님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함께 사목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그분들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는가? 얼마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이번 제16차 세계 주교 시노드에 제출한 ‘한국교회 종합의견서’ 3쪽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교회 안의 다양한 관계에서 듣는 데 어려움이 있으며, 함께 걸어가는 여정에 대한 동반자적 인식과 믿음의 부족이 경청의 부족으로 이어진다고 진단되었다.… 특별히 경청이 요구되는 그룹이 바로 성직자와 수도자이다.”
따라서 우리는 말로 사람들을 가르치기에 앞서 듣는 데 좀 더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닮은 삶과 인격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의 정신과 가치를 드러내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구는 세 군데 본당에서 주임신부가 보좌신부가 아니라 협력사제와 함께 사목하고 있습니다. 두 군데는 동기끼리 하고 있고, 한 군데는 선배 사제를 협력사제로 두고 있습니다. 하나의 모델 케이스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제만이 아니라 평신도 봉사자들도 우리의 중요한 협력자라는 인식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올해 우리 교구는 ‘친교의 해’를 맞이하여 주교가 대리구의 각 지역을 방문하여 지역의 신부님들과 간담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당의 사정이나 어려움에 대해서 나누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한 후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성시간을 가집니다.
그리고 난 후 지역 내 총회장님들과 차담회를 가지며 한 마디씩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총회장님들은 대체로 본당에서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신부님들의 좋은 점들과 잘 하시는 점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무슨 칭찬 릴레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라는 반석과 사도들 위에 세우셨지만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오는 온갖 박해와 시비를 겪어야 하고, 또한 내부로부터도 갈등과 상처와 불협화음을 겪기도 합니다. 사목자는 자기 협력자들과 함께 그런 것을 방어할 뿐만 아니라 예방하고 중재하고 치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오늘 독서에서 티모테오에게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그 대신에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