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끊임없는 적응과 위대한 타협과 천국(부활 제5주일) |
2008/04/18 9:2 |
끊임없는 적응과 위대한 타협과 천국
(요한복음 14,1-12)
사랑은 서로 길들여지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를 버리고 서로 길들여져야
사람이 되고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과 같은 것이 아니라
자기 실존을 바쳐야 얻을 수 있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변화는 생존에 필수적이다.
영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비자의 취향에 적응해야 하듯,
하느님과 맺는 관계와 대인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은 서로 끊임없이 타협하고 적응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적응이나 변화가
고집하거나 안주하는 것보다 모험이 적다.
변화가 없으면 불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마음이 젊고
무한히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적응할 능력을 잃어버린 표시이다.
오로지 바보나 죽은 자만이 절대로 양보하지 않고
자기 생각이나 견해를 바꾸지 않는다.
하느님도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세계에 들어와
여느 인간처럼 고독과 불의와 좌절과 증오에 희생되셨다.
끝까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바치셨다.
십자가 위에서 당신 실존의 의미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영영 여의지 않을까 하는 위기를 겪으며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마르 15,34) 하고 외치신 것도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받으신 고난이다.
예수님은 사랑의 힘으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어
하느님 왕국의 문을 여셨다.
이런 뜻에서 예수님은 이 왕국으로 가는 길이시다.
이 길로 가면,
불의와 고통과 불행과 죽음이 없는
완전한 사랑과 정의와 자유와 생명과 행복의 세계로 간다.
우리가 있을 자리를 마련하러
아버지께 올라가신 예수님은
우리를 아버지의 왕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 자리를 얻기 위해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예수님의 인품과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감성과 지성과 의지를 다하여
끊임없이 변신하고 적응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날마다 하느님의 신비를 더욱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하느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사람은
성령의 힘으로 그분의 새로운 모습에 매료되며
그분의 사랑을 한껏 받고
이웃을 제 자신처럼 사랑할 힘을 받는다.
"행복한 사람은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을 배운 사람이다."
예수님과 이웃에게 끊임없이 적응하지 않는 사람은
개인주의와 자기중심주의에 빠지고 만다.
훌륭한 사람의 인품을 본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표준으로 삼고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속이며
독선에 빠져 인격형성에 손상을 입으며
일종의 정신병을 앓는다.
그는 자기착각 속에 빠져
습관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이 없다.
헌신적인 사랑도 삶의 의미도
영생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없다.
“가장 어리석은 미신 가운데 하나는 과학자들이,
인간은 신앙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잘못 믿고 있는 일이다”(Leo Tolstoi).
숫돌이 제 몸을 깎아 칼을 예리하게 만들어주듯,
비누가 제 몸을 녹여 때를 말끔히 씻어 주듯,
우리도 끊임없이 예수님과 이웃에게 적응해야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래야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왕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집을 마련해 주신다.
참고도서
박영식,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해설(가해)>
가톨릭신문사 2007년 216-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