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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좁은 문(연중 제21주일 다해)
   2007/08/25  11:12

 

사랑의 좁은 문

(루카복음 13,22-30, 다해 연중 21주일)

 

예수님은 심판이 임박했기 때문에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이르셨다. 이 말씀에 감명을 받은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사람들의 수가 적을 것인지를 물었다. 그분은 이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구원으로 가는 문이 좁고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이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고 훈계하셨다. 좁은 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실천하기 위해 자기중심주의를 버리는 결단,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계속 수고하고 투쟁하는 것을 상징한다. 하느님이 이 좁은 문을 열어두시는 시간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문을 닫으시기 전에 들어가도록 서둘러야 한다.  하느님이 구원의 문을 닫아버리신 뒤에는 문을 열어주십사고 빌어도 때는 이미 늦었다. 예수님은 그분이 늦게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는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모른다고 대답하며 영원히 문을 닫아버리신다고 가르치셨다. 그들이 죽을 때까지 회개를 미룸으로써 하느님과 인격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대답을 듣는 것이 당연하다. 이웃과 함께 살아봐야 그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듯이, 하느님과 함께 살아야 그분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법이다.

 

“내가 이해하는 모든 것들은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레오 톨스토이)

 

지적으로뿐만 아니라 의지와 감성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동고동락하는 사람들은 그분을 닮고 그분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증언할 수 있다. 사랑의 좁은 길을 잘 가려면 바다 같이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서양격언). 하느님은 그들에게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처럼 하느님의 왕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상을 내리실 것이다.

 

성체성사에 참여하고 교리를 배워 가르치는 것만으로는하느님을 알아 뵐 수 없다. 하느님은 제도나 신학체계 안에 갇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평생 성당 주위를 맴돌며 살아도 예수님과 동고동락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불의를 일삼는 자들’이라는 단죄를 받는다.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왕국 밖으로 쫓겨나는 심판을 받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를 갈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따라 하느님을 만나 뵙는가 만나 뵙지 않는가에 따라 지금 꼴찌(예수님 의 복음을 늦게 믿고 따른 이방인들)가 첫째가 되고 지금 첫째(복음을 먼저 들은 예수님 시대 유대인들)가 꼴찌가 되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내나 남편이나 친구가 더없이 사랑스러울 때는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 고생한 그의 모습을 기억할 때이다. 하느님은 자기와 동고동락한 우리를 결코 잊지 않고 한없이 사랑해주신다.

 

“당신과 함께 웃은 사람은 잊을 수 있지만,

  당신과 함께 운 사람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참고도서

박영식, <루가 복음 해설 4. 루가 10,38-15,32.

                새 본문 번역과 해설. 성경의 세계 7>

                성바오로 2004년, 17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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