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맙습니다"(연중 제10주일) |
2008/06/06 8:17 |
"고맙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9,9-13)에서 세리 마태오는
예수님이 자기를 제자로 불러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뜻에서
성대한 잔치를 차리고 예수님을 모셨다.
그는 자기의 기쁨에 참여하도록
친구들도 잔치에 초대했다.
예수님도 그의 정성과 사랑을 받아들여
죄인들과의 상종을 피한 당대 유다인들의 관례를 어기면서
그와 다른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다.
그러자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신다고 비난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이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라고 응수하셨다.
서양 사람들이 날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감사하다’이다.
선물을 받을 때뿐만 아니라 벌금을 낼 때에도
‘고맙다’라는 말을 결코 잊지 않는다.
서양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반듯이 커줘서,
이러저러한 도움을 줘서
고맙다고 하는 말을 자주 한다.
부모가 나를 낳아주신 은혜를 죽음으로 갚고,
남에게 받은 은혜를 최선을 다해 갚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다.
감사는 가장 아름다운 예의이고
훌륭한 교양의 열매이다.
아무리 위험하고 다급한 처지에 놓이더라도,
아무리 사소한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고마워할 줄 아는 이는
자기중심주의에서 해방되어
하느님과 이웃의 행복을 추구하는 성숙한 사람이다.
고맙다는 말은 상대방의 존재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자기의 빚진 상태를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에서 우러나온다.
하느님이 나를 지어내고
생명을 주고
보살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리는 것은
그분을 창조주와 구원주로 받들어 모시는 신앙고백이다.
그러나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는 것은
무신론이다(로마 1,20-21).
몰상식하고 천박한 사람은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감사할 줄 모른다.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라는 말은
미루는 것이 아니다.
감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해야
효과를 극대화하고
듣는 이에게 가장 유쾌하다.
그러나 감사를 미루면
효과도 반감되고
영영 기회를 놓치는 수가 있다.
지체하면 모든 감사가 헛되고
가치가 없어진다.
미사는 하느님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고
날마다 당신과 함께 살게 해주신 데 대한 감사기도이다.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사람은
이웃에게도 감사할 줄 안다.
“예수님은 성체성사뿐 아니라
이웃에게 봉사하고
그를 사랑하는 이들 가운데도 현존하신다.
사랑은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그분의 현존을 증명하는 탁월한 방법이다.
성체성사를 포함한 모든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여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그분의 뜻에 부합하는 참된 예배가 된다"
(마태 9,13 = 호세 6,6).
참고도서
박영식, <성경과 주요교리> 가톨릭신문사 2005년 235쪽.
신간서적
박영식,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해설(나해)>
가톨릭신문사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