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Home > 가톨릭생활 > 칼럼 > 십자가를 안테나로
제목 할미꽃이 된 유채꽃 (할매꽃)
   2015/04/03  11:26
 할매꽃.jpg
                       

주: 제주 4. 3사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지난 2009년에 쓴 글을 다시 올려봅니다...
 
                                   <할미꽃이 된 유채꽃>

 

    십자가를 안테나로!
    요양원에서 저녁식사 배식을 돕느라 식판들을 양손에 들고 모친이 계시는 방으로 성급히 가고 있는데 평소 늘 혼자 있기를 좋아하시고 또 독방을 쓰고 있는 조씨 할머니가 갑자기 저를 부르셨습니다.
  “소장님요, 이리 좀 와 보이소!”

 

  저는 급한 일인 줄 알고 식판들을 들고 그 방으로 들어가보니 조씨 할머니가 자기 방 창가에 있는 노란 꽃 화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부끄러운 듯이,
  “소장님은 파랑나비 같은 분인데 이 예쁜 꽃을 보러 안 오는교?”
  “할머니, 화분의 노란 꽃이 무척 예쁜데 혹시 유채꽃이 아닌가요?”
  “몰라요! 할미가 키우면 다 할미꽃이지, 뭐, 대수겠어요?” 하고 한숨을 푹 쉬셨습니다.

 

  오늘은 약 60여년 전에 제주도의 노란 유채꽃이 할미꽃과 같은 핏빛으로 물들었던 제주 4.3 사건 기념일입니다. 그런데 수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정부의 4.3 사건 진상조사도 있었고 또 얼마 전에는 노대통령이 제주도에 직접 가서 공식적으로 유족들에게 사과도 하고 또 그들을 위로했었지만 아직도 가끔 이를 뒤집는 듯한 일부 인사들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가 되어 4. 3사건 유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유채꽃이 할미꽃이 된 것처럼 그 끔찍하고 험난한 전쟁들과 무자비한 세상풍파 속에도 꿋꿋하게 살아주신 요양원의 모든 어르신들과 또 제주도의 4. 3사건 유족들에게 감사하면서 좌, 우익의 전쟁중에 희생양이 된 한 가족을 그린 다큐영화 ‘할매꽃’을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영화 ‘할매꽃’>

 

    이 영화의 감독은 평생 정신병을 앓다가 비극적으로 돌아가신 자신의 작은 외할아버지의 이상한 일기장으로부터 시작해 자신의 외가가 겪은 슬픈 가족사에 대한 진실과 마주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비극의 중심에는 할미꽃과도 같은 외할머니가 있다.

 

    외할머니는 낮에는 산 속에 꼭꼭 숨어있어야만 하는 빨치산인 남편(외할아버지)을 간곡히 설득하여 경찰에 자수시킨다. 그런데 형님을 면회하고 옥바라지하기 위해 지서를 찾았던 시동생(작은 외할아버지)은 경찰에게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정신병에 시달린다. 스스로를 자해하고 가족들에게 무서운 폭력을 행사한 작은 외할아버지의 레드 콤플렉스는 평생 어떤 빨간색도 가까이 하지 못한 채 결국 스스로를 해침으로서 고단했던 일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시동생에 대한 미안함으로 평생 그 집안을 돌봐주었다.

 

   그런데 평생 시댁에 죄책감에 시달린 외할머니의 고통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같은 동네의 아는 경찰에게 부탁해 좌익 운동을 하던 친정 오빠를 자수시켰으나 그 경찰은 지서에 도착하기도 전에 오빠를 즉결 처형해 버리고, 식민지 시절 일본에 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오려던 남동생은 그 소식을 듣고는 일본에 남아 조총련의 열혈 활동가가 되었다. 그런데 정말 큰 고통은 자신의 오빠를 죽인 경찰의 딸과 자신의 딸(감독의 어머니)은 친한 친구 사이라는 것이다. 감독의 외할머니는 오빠가 죽은 사연을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가슴에 담아 두고는 오빠를 죽인 원수의 가족과 그동안 겉으로 웃으며 대해 왔다. 두려움으로 인해...

 

  그런데 외할머니 일가의 비극은 단지 한반도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본에 남은 그녀의  남동생으로도 이어진다. 활발한 활동으로 조총련 도쿄 지부장까지 오른 남동생은 남한 정권의 체제 선전에 이용당하는 바람에 조총련에서도 배척당하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 딸을 북한에 보냈다는 이유로 다른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고 혼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의 아들은 아직도 자신의 누나를 북한으로 보낸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다...

 

                                <말씀에 접지하기: 골로 1, 20>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http://cafe.daum.net/ds0ym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884 제 8호 태풍 프란치스코 이현철 19/08/03 4950
883 추억으로 가는 당신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이현철 19/06/29 5457
882 모친의 칠성바위, 북두칠성은? 이현철 19/06/12 5773
881 어느 가족의 슬픈 어린이날 (로지) 이현철 19/05/16 5727
880 나의 배역은? (비브르 사 비) 이현철 19/04/12 5644
879 베르골료 리스트 (미션) 이현철 19/03/29 5805
878 독가스로 죽어간 사람들 (사울의 아들) 이현철 19/03/05 5739
877 어느 기러기아빠의 죽음 (아름다운 비행) 이현철 19/02/17 5497
876 사랑의 바이러스가 되어주신 김추기경 (세븐 파운즈) 이현철 19/02/16 5396
875 흑인들의 생존지침서 (그린 북) 이현철 19/01/28 5830
874 차라리 고릴라에게 맡기세요! (가버나움) 이현철 19/01/27 6408
873 대성당의 살인 (로메로) 이현철 18/12/28 6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