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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31일 월요일

[(녹)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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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4(83),10-11 참조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주 하느님,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주님께서 약속하신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과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식사나 잔치를 베풀 때에 보답을 바라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면, 의인들이 부활할 때 보답을 받으리라고 하신다(복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2,1-4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2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4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131(130),1.2.3
◎ 주님, 제 영혼을 당신의 평화로 지켜 주소서.
○ 주님, 제 마음은 오만하지 않나이다. 제 눈은 높지도 않사옵니다. 감히 거창한 것을 따르지도, 분에 넘치는 것을 찾지도 않나이다. ◎
○ 오히려 저는 제 영혼을 다독이고 달랬나이다. 제 영혼은 마치 젖 뗀 아기, 어미 품에 안긴 아기 같사옵니다. ◎
○ 이스라엘아, 주님을 고대하여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
요한 8,31-32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깨달으리라.
◎ 알렐루야.
<네 친구를 부르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
시편 130(129),7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인자하신 주님,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니, 저희가 세상에서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늘에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사회가 양극화될수록 쌓여 가는 불만 때문에 극단적인 사건 사고가 늘어나지만, 동시에 가난한 이들과 약자들에 대한 손길은 더 필요합니다. 근래 기부 문화가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인색한 것이 사실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이란 표현을 자주 쓰지만, 솔직히 조건 없이 사랑하고, 조건 없이 희생하며 헌신하는 일은 드뭅니다. 
누군가를 도울 때 같은 물질적인 대가를 바라는 선행은 일종의 거래입니다. 언젠가는 그가 나를 도울 것이란 전제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식사에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이런 거래 형태의 선행은 하느님의 자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요즘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내는 부조(扶助)가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축하나 위로가 아닌 그야말로 경제적인 품앗이로 전락한 듯싶습니다. 마음의 표현까지 자본화되어 측량이 가능해지고, 같은 대가를 상대방에게 언젠가는 지불해야 하는 채무처럼 여깁니다. 비혼(非婚)이 늘어나면서 아예 혼인 포기를 선언하고, 그동안 전해 준 축의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의 무조건적 사랑에 철저히 뿌리박고 있습니다. ‘하느님’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그분은 측량할 수 없고 무한한 신비 그 자체이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웃과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보이며,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자기 것만 돌보지 않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는 일은, 하느님께 내가 받은 은총을 되돌려 드리는 일이어야지, 내 능력을 과시하거나 훗날 보답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면, 우리가 예수님의 참제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