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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 “고해성사는 재판정이 아니라 위로를 얻는 거룩한 포옹”
   2023/03/22  11:10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알 트리온팔레 성당에서 “주님을 위한 24시간” 참회예식 중 성체조배를 바치는 교황  (Vatican Media)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17일 로마교구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알 트리온팔레 성당에서 열린 참회예식에서 사순시기 기도와 화해의 프로젝트 “주님을 위한 24시간”을 거행했다. 교황은 고해사제를 통한 하느님과의 만남이 “마음을 치유하고 내면에 평화를 남기는 잔치”라며 “생명과 피조물을 거스르는” 죄에 대한 양심성찰을 제안했다.


Alessandro Di Bussolo / 번역 박수현

 

성경 속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바리사이처럼 성전 맨 앞줄에 꼿꼿이 서서 자신의 공로로 자신의 약함을 감추고 하느님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지 않은 채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말고, 세리처럼 성전 뒤편에 서서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죄인으로서 자비를 구하며 하느님께 기도하고 고해성사를 통해 주님과 그분의 자비를 만나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17일 오후 로마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알 트리온팔레 성당에서 거행된 ‘주님을 위한 24시간’ 참회예식 강론에서 모든 이에게 이 점을 권고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지시길 기다리십니다
지난 2022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참회예식을 거행한 교황은 올해엔 바티칸 성벽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본당의 신자들과 함께 사순시기 기도와 화해의 프로젝트를 거행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지시고 우리의 실패를 끌어안으시기 위해 항상 우리를 기다리신다고 말했다. 특히 화해의 성사(고해성사)는 “마음을 치유하고 내면에 평화를 남기는 잔치의 만남”이라며 “사람을 재판하는 재판정이 아니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거룩한 포옹”이라고 설명했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알 트리온팔레 성당에서 강론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

 

본당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남보다 더 낫다고 몇 번이나 생각하나요? 
교황은 제1독서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사도 바오로의 말로 강론을 시작하면서 그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자신에게 “이롭던 것들”을 “쓰레기”로 간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바오로가 포기한 것은 “종교적 부요함”이라며, 그것이 독실하고 준법적인 바리사이인 그에게 있어 자부심과 “공로의 원천”일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는 “걸림돌”이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기 자신의 종교적 성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더 낫다고 생각”하고 안심하지만 “하느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곧, 하느님을 자기 자신의 “자아”로 대체했기 때문에 “기도문을 외우고 경건하게 행동하지만 실제로 주님과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황은 “이러한 일들이 본당 안에서 얼마나 자주 발생하느냐”고 되물으며 준비한 원고를 잠시 내려놓고 즉흥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가톨릭 액션 출신이예요. 저는 신부님을 도와줄 거예요. 저는 헌금을 많이 한답니다.’ 전부 나, 나, 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일이 몇 번이나 발생하는지요? 우리 각자 마음속으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리라
교황은 이러한 “부요함”으로 인해 자신의 “자아”가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했다며 “기도문을 외우고 경건하게 행동하지만 실제로 주님과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경은 오직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집회 35,21)한다고 말합니다. 영적으로 가난하고 구원과 용서의 은총을 구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가식 없이, 오만 없이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므로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자신을 드러내며 기도하는 바리사이
교황은 루카복음의 비유를 들며 바리사이와 세리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갔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하느님의 마음에 닿는다”고 설명했다. 루카 복음사가에 따르면 “신체적 태도”가 두 사람을 대변한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기도한 반면,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했다(루카 18,11-13 참조). 교황은 이러한 태도를 잠시 생각해 보자며, 바리사이가 “자신의 공로를 통해 존경받아야 할 사람처럼, 자신감이 넘치고 꼿꼿하고 당당하게 서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느님께 기도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칭송하는 것입니다. 성전에 가고, 율법을 지키고, 자선을 베푸는 자기 자신 말입니다.”

 

“형식적으로 그의 기도는 흠잡을 데 없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하고 독실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대신 위선으로 자신의 약점을 가립니다. 그는 주님의 구원을 거저 주는 선물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구원을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자리를 만들어 놓은 세리 
교황은 바리사이가 거침없이 하느님을 향해 전진해 “맨 앞줄에 자리를 차지”했지만 “너무 멀리 가는 바람에 하느님 앞에 자기 자신을 두는 것에서 멀어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세리는 거리를 유지하고 멀찍이 서 있었다며,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뒤쪽에 머물러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느님의 거룩함 앞에서 스스로 죄인임을 드러내는 바로 그 거리가 아버지의 품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다가오실 수 있었던 것은 정확히 그가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가정, 우리 사회, 심지어 교회 내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대화는 우리 자신과 상대방 사이에 일정한 공간, 곧 서로에게 빨려 들어가거나 압도당하지 않고 숨을 쉴 수 있는 건강한 공간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이뤄집니다. 그래야만 대화와 만남이 거리를 좁히고 친밀함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만한 자아”와 거리를 둡니다
교황은 “우리가 교만한 자아와 거리를 둘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신다”며, 이러한 일이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자고 초대했다.

 

“각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나는 교만하지 않는가? 나는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누군가를 다소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 저를 구원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저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저는 성당에 다니고 미사에 참례합니다. 저는 성당에서 혼인했지만 저 사람들은 이혼한 죄인들입니다. (...)’ 여러분의 마음은 이런가요? 그런 마음은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 것입니다!”

 

교황은 원고를 잠시 내려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려면 주님께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저는 죄인 중 으뜸입니다. 제가 더 큰 악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의 자비가 저를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가식 없이 정직하게 우리의 약함을 그분 앞으로 가져갈 때마다 우리와의 거리를 좁혀 주십니다. 우리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올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우리를 들어올려 주십니다.”

 

고해성사를 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밑바닥에 내려놓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모습이다. 곧, 하느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 내면의 심연까지” “깊은 곳으로 내려가시어”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하느님께서는 두려움 없이 우리 내면의 심연으로 내려가시어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지시고, 우리의 가난과 인생의 실패를 끌어안으십니다.” 교황은 하느님께서 “특히 참회의 성사(고해성사)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고 말했다. 아울러 “바리사이와 세리의 모습이 모두 우리 내면에 있기 때문에 양심성찰을 하자”고 초대했다.

 

“겉모습의 위선 뒤에 숨지 말고 우리의 어둠과 잘못, 불행을 신뢰를 가지고 주님의 자비에 맡기도록 합시다. 고해성사를 하러 갈 때 하느님께서 우리 삶을 위해 생각해 두신 바와 매일 우리의 실제 모습 사이에 있는 거리를 인식할 수 있도록 세리처럼 우리도 뒤로 물러섭시다.” 

 

교황은 “그 순간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그 거리를 좁혀 주시고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다”며 “우리가 벌거벗었음을 깨닫는 순간, 주님께서 우리에게 잔치의 예복을 입혀 주신다”고 강조했다.

 

“마음을 치유하고 내면에 평화를 주는 잔치의 만남이 화해의 성사(고해성사)의 의미입니다. 사람을 재판하는 재판정이 아니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거룩한 포옹입니다.”

 


참회예식 중 고해성사

 

“형제 고해사제 여러분, 따뜻한 눈길로 모두 용서하십시오”
교황은 여기서 주님의 “사랑이 담긴 포옹”을 떠올렸다. 성경 속 돌아온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를 “껴안아 주며” 아들이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하게 했다. 교황은 원고를 내려놓고 즉흥적으로 “형제 고해사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형제 여러분, 사람들의 양심에 너무 많은 부담을 주지 말고 부디 모든 것을 용서하십시오. 항상 용서하십시오.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예수님처럼 이해의 침묵과 따뜻한 눈길로 어루만져 주십시오. 고해성사는 고문하는 자리가 아니라 평화를 주는 자리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두 용서하실 것이니 여러분도 모두 용서하십시오. 모든 것, 모든 것, 모든 것을 말입니다.”

 

양심성찰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끝으로 교황은 양심성찰을 제안하며 세리의 기도를 기억하라고 말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교황은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알 트리온팔레 성당에서 거행한 참회예식에 참여한 모든 신자들에게 이 기도를 반복하도록 당부했다.

 

“하느님, 제가 당신을 잊거나 소홀히 하고, 당신의 말씀보다 저의 말과 세상의 말을 앞세우고, 제가 의롭다고 자부하며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비방했으니, 오, 하느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제가 주변 사람들을 전혀 돌보지 않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약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무관심했으니, 오, 하느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제가 생명을 거스르는 죄를 짓고, 나쁜 행실로 어머니 교회의 아름다운 얼굴을 더럽히고, 피조물을 거스르는 죄를 지었으니, 오, 하느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의 거짓과 이중성으로 투명성과 합법성이 부족했으니, 오, 하느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무도 모르는 저의 숨겨진 죄, 저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잘못, 제가 할 수 있었지만 하지 못한 선행에 대해서도, 오, 하느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교황은 이 회개와 신뢰의 행위에서 “더 큰 선물, 곧 하느님 자비에 대한 기쁨에 우리 마음을 열자”고 초대했다.

 

원문 :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3-03/papa-francesco-penitenziale-confessione-24-ore-signore-trionfal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