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가 아이를 가진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느님께는 가능한 일이라고, 누군가는 확신에 차서 말하겠지만, 그럼에도 처녀가 아이를 가지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럼요. 가능과 불가능의 차이를 여전히 간직한 채, 성모님의 잉태를 읽어 내려가는 일이 가끔씩 허무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의 상식 너머의 일을 인간의 입장에서 가능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학자들은 성모님의 동정 잉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동정 잉태’는 하느님의 개입을 가리키는 당시의 전통적, 상징적 표현이라고 말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상식 밖에서 일하시고, 하느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그에 따른 태도는 성모님의 이 말씀 하나로 요약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개입으로 메시아가 세상에 오셨고 세상은 그분을 통해 구원이란 걸 얻어 누리고 있습니다. 그 개입의 방식과 형식이 인간의 전통과 상식에 얼마간 비껴간다고 해서, 하느님의 일이 멈추진 않습니다. 어쩌면 신앙이란 건, 인간 너머의 것을 향한 초월의 시선 안에 담겨 있는 것이겠지요. 넉넉한 가능성을 지닌 신앙이 하느님을 읽어 낼 수 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