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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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친교로 하나되어

 

■ 이 소책자는...

 

우리 교구는 장기사목계획에 따라 2023년부터 두 해를 ‘친교의 해’로 지냅니다. 이 소책자는 ‘친교’가 무슨 뜻인지,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제작되었습니다.

 

한꺼번에 쭉 읽기보다 조금씩 천천히 읽으시길 권합니다. 읽기 전에 기도를 바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으신 다음, 기도로 마무리하시면 더 좋습니다.

 

혼자 읽고 묵상할 때 사용하셔도 되고, 그룹이나 모임에서 주제별로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눌 때 사용하셔도 됩니다. (5회 분량)

 

□ 이 소책자는 5가지 주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친교의 원천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2. 친교의 이유 –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3..친교의 체험 – 친교의 교회, 바로 우리입니다.

4. 친교의 방법 – 함께 가는 여정

5. 친교의 확장 – 인류는 지구라는 공동의 집에 사는 한 공동체입니다.

 

펴낸날 : 2022년 대림 1주일

펴낸이 :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엮은이 : 교구 사목연구소 오늘

 

 

친교의 해 기도문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지난 ‘말씀의 해’를 통해 저희 교구에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리나이다.

 

저희는 교구 설정 120주년과

조선교구 설정 200주년을 바라보면서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말씀, 친교, 전례, 이웃사랑, 그리고 선교라는 핵심가치를

매 2년씩 중점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나이다.

 

두 번째 단계로서 ‘친교의 해’를 살아가며 청하오니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 사랑 안에서

서로를 향하고, 서로 함께하며, 서로를 위하는

친교의 신비를 드러냄으로써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성인과 복자들이여,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인준

 

 

1. 친교의 원천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따로 또 같이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 여러 사람들 안에서 부대끼는 불편함... 우리는 때로 두 극단적인 감정 사이를 시계추처럼 왕복합니다. 사람이 든든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며 원망하기도 하지요. 상대방의 마음이 멀어진 것 같아서 느끼는 불안함과, 상대방의 집착이 싫어서 차라리 혼자 살고 싶은 두려움이 교차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는 한없이 가까운 것 같아도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허약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극단을 오가며 어떻게 해야 내가 나로 살 수 있는지, 다른 이들과는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지 평생 배워갑니다. 내가 나로서 충분히 존중받으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과 하나가 되는 충만한 기쁨, 우리는 과연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우리 신앙인들은 인간이 각자 존중받으면서 한마음 한몸으로 일치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하셨고 우리를 당신 사랑의 신비 안에 초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지만 항상 함께 계시고, 서로를 향해 계시며, 서로를 위해 계시는 분이므로 하느님은 사랑 바로 그 자체이시지요. 원래부터 서로 구별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갈라지지 않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의 관계를 친교(Communio)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어 끊임없이 비유로 이야기해 주시고, 설명해 주시며, 몸소 실천을 통해서 사랑을 증명하셨고, 결국에는 당신 자신을 구원의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친교가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친교의 통로가 되어주셨지요.

 

이렇게 아낌없이 줄 수 있는 마음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요?

 

예수님은 이런 마음을 비유로 설명해 주십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선한 마음은 가장 직접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친교의 비유라 할 수 있고,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맞는 아버지의 마음 등을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 주는 하느님의 친교를 이야기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병 때문에 공동체에 어울리지 못한 이들, 가진 것이 너무 많거나(예를 들면 자캐오나 세리들) 너무 없어서 관계를 단절하고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던 이들, 이방인과 같이 소외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이들 모두는 당시 사회의 주된 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하느님 백성’으로 이끌어 들이십니다.

 

예수님의 구원사업의 핵심은 하느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친교를 이루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 전체가 흩어져 있는 자녀들을 하나로 모아들이는 것을 지향하고 있었지요. 

 

예수님께 치유의 기적 혹은 마귀를 몰아내는 기적을 입은 사람들, 또 예수님으로부터 불림을 받았던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봅시다. 그들은 이제 새 삶을 살게 됩니다. 눈이나 귀, 또는 목소리와 마음의 치유를 통해 다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 이들은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친교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변화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받았던 친교의 은총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지 않을까요? 바로 이것이 백배, 천 배의 열매를 맺는 밀알의 비유, 포도나무에 붙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의 비유가 설명하는 바일 것입니다. 하느님과 일치됨 즉 하느님 나무의 가지가 된 사람들은 하느님과 같은 사랑 속에 있게 됩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불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마치 곁에 계시는 것처럼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친교 그 자체이시니까요.

 

지난 태풍 힌남노가 우리 지역을 강타했을 때 물에 잠기고 부서진 포항지역 성당에 베트남 공동체 사람들이 맨 먼저 달려와 생업을 포기한 채로 일손을 도왔다고 합니다. 남의 나라에 돈을 벌기 위해 온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 결혼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나라 1세대 이민자들도 타국으로 건너가 차별과 홀대를 받으면서도 꿋꿋이 견뎌내 훌륭하게 정착한 사례가 많습니다. 하느님 자녀로서 연대와 연민으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도록 기도합시다.

 

“너희와 함께 머무르는 이방인을 너희 본토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 그를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레위 19, 9-10

 


조금 더 알아봅시다

 

친교의 영성은 모든 교회 생활의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

친교는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한 마음의 관상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영성이 없는 외적인 친교(모임, 사목협의회 등)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외적인 친교는 영혼이 없는 장치, 친교의 ‘가면’이 될 것입니다. (새천년기 43)


 

모임과 묵상을 위한 도움

 

1. 먼저 앞의 글을 천천히 읽습니다.

 

2. 마음에 드는 질문을 골라 함께 나누어 봅시다.

- 친교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이야기해 봅시다.

- 하나로 모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 나는 어떨 때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나요?

- 교회 안에서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나요?

- 혹시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요? 그때 나는 어떻게 했나요?

 

3. 나누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느님과의 친교와 관련하여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친교이신 하느님을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이런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친교이신 하느님을 기도 안에서 만날 수 있도록 일상기도를 게을리하지 않고, 성체조배와 성시간에도 참여합니다.

 

◎ 본당 공동체에서 드리는 주일미사에서 보편지향 기도를 스스로 만들어 봅니다.

 

◎ 말씀의 해에 이어 성경 말씀을 다시 읽고 성경 공부를 계속합니다.

 

◎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신앙 일대기를 써봅니다.

 

◎ 피정이나 성경학교, 전례교육, 신앙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 유튜브 등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신앙특강 등을 들어봅니다.

 

 

 

 

 

 

 

 

※ 친교를 실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 봅시다.

 

 

2. 친교의 이유 :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1코린 2,16)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룬 구성원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고 난 이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다닙니다. 그중에는 간절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통해 기적을 경험한 이도 있고, 예수님이 일으키는 기적을 목격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기적을 목격하거나 경험하지 못했다하더라도 “당시 꽤 유명한”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들도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그저 좋은 말씀을 듣거나 기적을 목격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인생을 바꾸어 버릴 만큼 충격적인 소식이었지요.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요한 20,20 처음에는 당황하고 어리둥절해 하던 제자들이 살아 계시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현존을 체험하고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에 가득 찹니다. 죽음과 부활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체험하고 변화된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공감하고, 예수님처럼 소외된 이를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서로 다른 언어와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활동을 통해 화음을 이루고 서로 간의 이해를 쌓아갑니다. 나아가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성령의 선물요한 20,22과, 이 세상 모든 사람마태 28,19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새천년기 18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사명은 세상에 분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 서로 간의 친교가 있음을 드러내고 그 안으로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습니다.

 

이렇게 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의 친교를 세상으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교회는 친교의 신비를 세상에 드러내는 도구가 된 것이지요. 친교의 도구인 교회는 성령의 힘으로 말미암아 점점 더 많은 사람을 교회로 모아들이고, 인류 역사의 곳곳에서 하느님의 친교를 드러내었습니다. 수많은 박해와 갖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는 더 깊게 뿌리를 내려왔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도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고, 또 그런 사람들이 모여 일치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모여있는 교회는 바로 이런 곳이지요. 사도로부터 이어져 온 교회, 모든 성인의 통공인 교회, 예수님의 친교를 세상에 드러내는 도구인 교회입니다. 우리가 ‘성당에 다닌다’고 하는 것은 ‘그저 다녀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삶 전체를 통해 보여주신 친교를 살아갈 수 있는 곳,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랑을 실천했던 선조들의 삶을 우리도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조금 더 알아봅시다

 

인류의 빛(Lumen Gentium)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습니다.(교회 헌장 1)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회의 진정한 외적 일치가 정신과 마음의 일치, 곧 성령 안에서 그 일치를 결코 풀어질 수 없게 이루어 주는 믿음과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줍니다.

(사목헌장 42)


 

모임과 묵상을 위한 도움

 

1. 먼저 앞의 글을 천천히 읽습니다.

 

2. 마음에 드는 질문을 골라 함께 나누어 봅시다.

- 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환영받는다고 느낍니까? 반대로 나는 교회 공동체 구

- 성원들을 진심으로 환대하고 있습니까?

- 교회 공동체가 자랑스러웠을 때는 언제인가요?

- 전례나 성사 안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느낄 때가 언제인가요?

- 내 삶의 중요한 대목에서 하느님을 느낀 적이 있나요?

- 삶 안에서 예수님께 위로받은 적이 있나요?

-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마음을 나눌 때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렇게 했나요?

 

3. 나누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느님과의 친교와 관련하여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친교이신 하느님을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이런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먼저 인사합시다.

 

◎ 본당 공동체 구성원들을 진심으로 환대합니다.

 

◎ 본당 공동체 구성원들을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로 받아들이고 서로 격려합니다.

 

◎ 내가 속한 단체 혹은 모임의 구성원들과 서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뒷담화를 하지 않습니다.

 

◎ 본당 공동체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 우리나라 혹은 내 주변지역에서 발생한 재해의 피해자들을 진심으로 돕습니다.

 

 

 

 

 

 

 

 

※ 친교를 실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 봅시다.

 

 

3. 친교의 체험 : 친교의 교회, 바로 우리입니다

 

친목을 도모하면 친교가 이루어질까요?

 

친목(friendship)은 친교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친했던 사이가 뜻하지 않은 계기로 심각하게 훼손되는 상황을 가끔 목격합니다. 성당의 신자들 간의 관계도 그렇고, 하느님과의 관계도 훼손될 때가 있지요. 이렇게 친목이 깨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나 친교는 깨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친교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끊임없이 주시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우리가 자유의지로 그 사랑을 거부하거나 외면한다 할지라도 하느님은 우리의 뒤통수를 향해 계속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친교(Communio)는 라틴어 어원에서 ‘책임을 나누어 완수하다(Com+Munus)’는 뜻이고, 그리스어 어원에서는 ‘참여(Koinonia)’라는 뜻을 가집니다. 즉 친교는 공동 책임과 공동참여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공동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공동으로 참여하려면 ‘능동적’이어야 하지요. 뒷줄에 앉아 수수방관하면서 어떻게 함께 책임을 질 수 있겠습니까. 함께 책임을 지고 함께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친교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져야 하는 책임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불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고, 사람들을 모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엄청난 힘에 의해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불림을 받은 것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는 하느님과의 친교로 그리 된 것입니다. 성령이 그물처럼 우리를 불러모아 서로를 이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사를 거행할 때마다 직접 체험합니다. 예를 들어 세례 때에 우리는 물과 기름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됨을 증명받고, 성체를 받아 모실 때마다 그리스도와 한몸이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은 머리와 여러 지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만을 따로 떼어서 받는 것이 아니고 그의 지체인 많은 형제, 자매들과 함께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교회’가 되는 은총 속에 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공동으로 져야 하는 책임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시는 일치의 신비를 풍성히 누리고, 스스로 교회로서 친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 삶의 모양과 색깔은 다르나 그렇게 각양각색의 삶들이 교회 안에서 일치와 하느님과의 친교를 이루게 된다면 그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이 바라는 것도 이런 알록달록한 일치입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주셨습니다.” 1코린 1,9

 


조금 더 알아봅시다

 

성찬례는 친교를 낳고 친교를 강화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코린토의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들의 성찬 모임에서 드러난 분열이 그들이 거행하는 주님의 만찬과 얼마나 모순되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형제적 친교의 정신을 되찾으려면 성찬례의 참된 실재를 묵상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1코린 11,17-34 참조

 

실제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 “여러분이 그분의 몸이며 지체라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신비가 주님의 식탁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신비를 받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40)


 

모임과 묵상을 위한 도움

 

1. 먼저 앞의 글을 천천히 읽습니다.

 

2. 마음에 드는 질문을 골라 함께 나누어 봅시다.

- 하느님과의 친교가 이웃에게 전달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 본당은 나에게 진정한 공동체입니까? 진정한 공동체란 무엇일까요?

- 나에게 있어 은총이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 다른 이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 나를 위한 기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위한 기도 외에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해 본 적 있나요?

 

3. 나누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느님과의 친교와 관련하여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친교이신 하느님을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이런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공동체를 신뢰하면서 나를 열어 보입니다.

 

◎ 나와 다른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듣습니다.

 

◎ 나의 의견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 다른 사람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 미사 때 평화의 인사를 정성껏 합니다.

 

◎ 반모임, 소공동체 모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 본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 제단체, 신심단체에 가입하거나 본당 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합니다.

 

◎ 주위의 쉬는 교우나 소외된 이들, 노인이나 병자들을 찾아봅니다.

 

 

 

 

 

 

 

 

※ 친교를 실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 봅시다.

 

 

4. 친교의 방법 : 함께 가는 여정

 

친교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라고요?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친교를 확인하고 또 하느님의 구원의 선물을 나누어 가지게 된 우리는, 각자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친교에 참여하고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며 그 안에서 예수님과 일치하도록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밀알은 빻아져야 빵이 되고, 포도알은 으깨져서 포도주가 되며, 겨자씨는 자신을 오롯이 내어놓아야만 백 배, 천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죄인인 인간의 모습으로 세례를 받으시고 당신 자신을 오롯이 내어놓는 수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여기서 ‘빻아지고’, ‘으깨지고’, ‘내어놓는’ 수난에만 초점을 맞추면 친교의 삶을 사는 것이 힘들고 괴로운 과정이 되지만, 빵이 되고, 포도주가 되며, 천 배의 열매를 맺는 부활의 영광에 목표를 둔다면 우리의 삶 곳곳에서 친교의 은총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지난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체험했습니다. 어떤 이웃이나 가족 중의 누군가가 감염이 되면, 온종일 뉴스거리가 되고, 걱정거리가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도대체 어디를 뭘 하고 다녔길래!”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일상이었지요. 이렇게 사람이 꺼려지던 시기에도 그나마 일상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내어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먹거리를 배달해주고, 환자들을 치료하고, 의심증상이 있는 사람들을 검사하던 그 누군가는 자신의 안전을, 자신의 건강을, 자신의 안위를 내어놓았습니다. 그렇게 내어놓기 시작하자 다른 이들도 함께하기 시작했지요. 마스크를 나누고, 음식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의심의 눈초리보다 위로의 마음을 내어놓았습니다. 마스크 한 장에, 따뜻한 안부인사 한 마디에, 위로의 전화 한 통에 우리는 풍성한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습니다.

 

이런 나눔은 나의 것을 내려놓고 타인을 바라보면서, 그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그 역시 하느님의 백성임을 깨닫고 실천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서로 함께 걸어가는 길은 서로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길입니다. 자신만을 바라보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과정을 통해 하느님을 닮는 친교의 은총을 살 수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 걸어가는 길은 서로의 장점을 바라보고,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알아차리는 길입니다. 타인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풍부하게 내려져 있음을 긍정하는 길입니다.

 

서로를 향해 걸어가는 길은 우리가 하느님의 네트워크 안에 들어있고, 예수님을 통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길입니다. 너와 내가 하느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내가 변화하는 것이 상대를 변화시키는 길이고,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켜서 성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친교는 내 삶이 누군가의 사랑으로 이루어지고 지탱되고 있음을 깨닫고 그 사랑에 감사하며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관계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서로 함께 살고, 서로를 위해 살며, 서로를 향하여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조금 더 알아봅시다

 

우리는 끝 간데없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열광적 소비주의에 휩쓸리면서,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위해, 서로 함께, 서로를 향해’ 사는 방법을 잊어버렸고, 더불어 살아야 할 우리가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교회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를 살고 증거하는 사명을 실천하는 데 앞장서야 하며 친교의 영성을 익히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친교의 영성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양보하며”, “남의 짐을 져주고”갈라 6,2,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붙어 다니면서 경쟁심과 출세욕, 불신과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기적인 유혹을 물리칠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구장 사목교서)


 

모임과 묵상을 위한 도움

 

1. 먼저 앞의 글을 천천히 읽습니다.

 

2. 마음에 드는 질문을 골라 함께 나누어 봅시다.

- 서로를 통해 ‘하느님의 선물임’을 알아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 하느님의 네트워크 안에 산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나요?

- 코로나 시기에 가장 고마웠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 코로나 시기에 내가 칭찬받았던 일이 있었나요?

- 지금 떠오르는 대로 감사해야 할 사람들을 적으라면 몇 명이나 적을 수 있을까요?

 

3. 나누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느님과의 친교와 관련하여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친교이신 하느님을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이런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교회나 사회 안에서 어려운 이를 위해 봉사할 시간을 내어봅시다.

 

◎ 하느님께서 주신 나의 달란트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 그 달란트를 잘 사용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 개인 또는 본당 단체를 통해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기회를 가져봅시다.

 

◎ 지역사회 안에서 좋은 이웃이 됩시다.

 

◎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화살기도).

 

◎ 가정 안에서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 미사참례를 가족과 함께 하도록 합시다.

 

◎ 서로에게 선물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합니다.

 

◎ 나부터 변합시다.

 

 

 

 

 

 

 

 

※ 친교를 실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 봅시다.

 

 

5. 친교의 확장 : 인류는 지구라는 공동의 집에 사는 한 공동체입니다. 찬미받으소서 164

 

우리는 공동의 집에 사는 하느님의 피조물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를 겪었고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원망이 생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누군가 이 위기를 해결해 주리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겠지요.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이 상황의 직접적인 당사자(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느님이 줄곧 말씀하시는 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서 사람을 데려다 “일구고 돌보게”창세 2,15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창세 2,19)줍니다. 이것은 사람이 다른 피조물보다 더 우월하므로 지배적인 지위를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하여 지상의 질서를 유지하라는 의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통하여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또 해결을 위해 구체적으로 행동하자고 호소하십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연에 대한 지배권창세 1,28을 잘못 이해하여 기술 지상주의, 물질 만능주의, 끝없는 소비 지상주의에 심취한 나머지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당사자가 되었음을 회개하고 파괴된 질서를 되돌려 놓아야 함을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친교는 하느님의 네트워크 안으로 모든 피조물들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친교 안으로 들어가서 하느님의 친교를 함께 실행하는 수평적 친교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파괴된 자연의 질서를 되돌려 놓는 것은 바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지요. 하느님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결 관계의 가장 기본인 나 자신의 회개(생태적 회개)가 가장 중요합니다.

 

공동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과 우리 자신, 나아가 우리들 사이에 바탕이 되는 구원의 장소이며 우리 다음에 올 후손에게 또한 그러해야 합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창세 2,18-19)

 


조금 더 알아봅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는 인간을 생태계 구성원의 일원으로 생각하며, 인간과 자연환경, 물질순환, 사회문제 등과의 상호관계, 생태환경, 자연환경을 다루는 매우 폭넓은 관점으로 생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처럼 인간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 자신의 내적 조화를 회복하는 회심이 요구됩니다.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예언적이고 관상적인 생활방식을 독려하고, 성경을 비롯한 다양한 종교 전통들 안에 담겨 있는 오래된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곧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라는 확신입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절제를 통하여 성숙해지고 적은 것으로도 행복해지는 능력을 제안합니다. 바로 검소함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찬미받으소서 222)


 

모임과 묵상을 위한 도움

 

1. 먼저 앞의 글을 천천히 읽습니다.

 

2. 마음에 드는 질문을 골라 함께 나누어 봅시다.

-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은 단순히 기도로 이룰 수 있을까요?

- 생태적 회개의 관점에서 나의 하루는 어땠나요?

- 세상 어느 누구도 홀로 완성된 인간이 될 수 없음을 묵상해 봅시다.

- 전 지구인과 모든 생태계의 평화와 사랑, 화해와 회복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

- 그 덕목을 실행하기 위한 대안이나 프로그램을 제안해 봅시다.

 

3. 나누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느님과의 친교와 관련하여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친교이신 하느님을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이런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절제합니다.

 

◎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 나보다 더 잘 활용할 사람에게 양보합시다.

 

◎ 어려운 타인을 도와줄 때, 나의 입장이 아니라 도움받는 타인의 입장에서 필요한 도움을 주고 있는지 되돌아봅시다.

 

◎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라는 말의 의미와 관련된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 과소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 재활용 및 분리수거를 실천합니다.

 

◎ 일회용품 사용을 줄입니다.

 

 

 

 

 

 

 

 

※ 친교를 실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