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다. (김수환 추기경 탄생100주년 추모미사 강론) |
2022/06/13 13:19 |
김수환 추기경 탄생100주년 추모미사
2022년 6월 6일,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
김수환 추기경님 탄생 100주년 추모미사에 함께하신 교우 여러분 반갑습니다. 김추기경님의 부모님은 1922년 4월 군위 용대리로 이사오셨고, 그해 5월 서중하(徐仲夏) 마르티나 어머니는 출산을 하러 부친 서용서 회장의 집으로 가셨기에, 추기경은 외가에서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집안은 추기경님이 다섯 살 되던 해에 군위로 다시 이사하였고, 추기경은 이곳에서 유스티노 소신학교 입학 전까지 사셨습니다. 순교자 후손인 부친 김영석(金永錫) 요셉은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8살 때 부친 선종하셨고요, 신앙에 열심하신 모친은 집을 공소로 제공하셨으니, 추기경님의 신앙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신앙이었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권유로 신학교에 입학하였으니, 모친께서 추기경님의 사제성소를 빨리 알아차리시고 권유하셨나 봅니다.
김추기경님은 스스로 가톨릭신문사사장시절이 가장 열정적으로 일했던 시기라고 하셨는데요.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알고 실천할 수 있도록, 가톨릭신문으로 공의회 소식을 알리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김추기경님이 1970-80년대 한국 사회와 정치 현안에 적극 참여한 데에는 교회가 시대의 징표를 읽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공의회 가르침이 큰 바탕이 되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때 명동성당에 피신한 학생들을 연행하러온 경찰들에게, ‘경찰이 성당에 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날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또 그 뒤에 수녀들이 있고, 그리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하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추기경님은 이렇게 가난하고 병들고 죄지은 사람들 곁에 머무르다 마침내 목숨까지 바치신 그리스도를 따르려 하셨던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보도 사진과 영상자료를 보면 추기경님의 ‘고뇌하는 표정’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추기경님은 ‘그동안 많이 사랑 받아서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2009년 2월 16일 선종하셨습니다. 법의학자(유성호)의 강연에 따르면, 김추기경님은 의료진에게 ‘심폐소생술을 안하셔도 됩니다. 하느님 만나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하셨구요. 그런데도 호흡이 멈추었을 때 의료진이 본능적으로 심폐소생술을 해서 한차례 소생시키자 ‘다시 안하셔도 됩니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선종 후에 ‘사후 각막 기증 서약’에 따라 안구 적출 수술을 하고 장례를 거행하셨습니다, 이것이 알려져 선종 후 1주일간 각막 기증자가 많이 몰려들어 장기기증운동본부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합니다.
김추기경님의 시 <우산>을 일부 들어보시겠습니다.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 우산을 더 이상 펼치지 않는 일이다.// ...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사랑이란/ 한쪽 어깨가 젖는데도 하나의 우산을/ 둘이 함께 쓰는 것이요,/ 이별이란/ 하나의 우산 속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우산을 펼치는 일이다.// ,,,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갈 줄 알면/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은 시대의 징표를 읽고 복음의 빛으로 해석하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셨습니다. 우리도 추기경님께서 닮고자 노력하셨던 예수님의 큰 사랑을 받고 또 구원을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추기경님의 뒤를 이어 그리스도 신자로서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실천해가면 좋겠습니다. 김추기경님의 방법에 따라, 오늘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시노드 정신’과 회칙 ‘찬미받으소서’와 교회 가르침을 살아갑시다. 김추기경님 시처럼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어 주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