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Home > 교구장/보좌주교 > 교구장 말씀
제목 밥이 되어주는 사람 (성유축성미사 강론)
   2018/03/30  9:30

성유축성미사

 

2018. 03. 29. 주교좌범어대성당

 

오늘 우리는 이 미사 중에 교회가 앞으로 일 년 동안 사용할 병자성유와 예비신자 성유, 그리고 축성 성유를 축성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유축성 전에 신부님들의 서약 갱신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신부님들은 자신이 예전에 사제품을 받았던 그때를 기억하며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제 직무에 더욱 충실할 것을 다짐하시기 바라며, 교우분들은 서약 갱신하시는 신부님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3월 21일 수요일에 일본 나가사키와 후쿠오카에서 사제서품이 있었습니다. 4년 전에 우리 신학교 학부 4학년을 마친 김봄 요셉 신학생을 나가사키대교구에, 그리고 이한웅 사도 요한 신학생을 후쿠오카교구에 파견하여 일본 신학교에서 연구과 과정을 공부하게 하였는데 이번에 사제로 서품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나가사키에, 그리고 장주교님께서 후쿠오카에 가서 서품식에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김봄 신부님과 이한웅 신부님이 그곳의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았고 열심히, 또 기쁘게 사는 모습을 잠깐이지만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가사키의 대주교님과 후쿠오카의 주교님께서 아주 흐뭇해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최근에 발간된 우리 교구 주소록에 실려 있는 신부님들의 명단을 보면 신부님들의 숫자가 모두 498명이었습니다. 이번에 일본에서 두 사제가 태어났기 때문에 꼭 500명이 되었습니다. 1911년 대구대목구가 설정될 때 교구 신부님들의 숫자가 불과 열아홉 분이었음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복음 선포의 현장에서는 사제의 귀함과 사제의 손길의 아쉬움을 느끼는 곳이 많습니다.

 

저는 최근에, 이미 고인이 되신 세 분을 만나는 좋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난주에 일본에서 있었던 사제서품식에 간 김에 시마네현의 운남시에 있는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생가와 전시관을 방문하였습니다. 나가사키에 있는 여기당은 여러 번 갔었지만 생가는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번 방문이 처음이었습니다.

한 20여 년 전에 이 대주교님을 따라 나가사키 성지순례를 처음 갔을 때, 옛날 신학생 시절 몇 가지 책을 통하여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나가이 다카시 박사를 현장체험을 하듯이 다시 새롭게 알게 되면서 그분의 뛰어난 신앙과 박애정신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께서는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의해서 자기 부인이 부엌에서 일하다가 재가 되어버렸고, 나가사키 주교좌성당인 우라카미 성당의 12000명의 신자 중에 8000명의 신자들이 희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주와 원망이 아니라 ‘여기애인’을 외치고 평화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 신앙으로 자신을 다져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3월 26일에는 성모당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108주기 추모미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대구가톨릭대학의 ‘안중근 연구소’와 ‘대구지방변호사회’의 주관으로 행사가 있었는데 저에게 미사를 부탁하여 제가 집전을 하였습니다.

8년 전인 2010년 3월에 대구국립박물관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 기념 유품 전시회’가 있었는데, 3월 26일 오전 10시 안 의사께서 사형집행이 되던 그 시간에 박물관 강당에서 추모미사를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 미사 강론을 준비하면서 ‘안응칠 역사’라는 자서전을 읽었었는데 이렇게 신앙이 좋을 수 있는가 하고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안 의사께서 1909년에, 한일합방 직전에, 자기 한 몸 부지하기도 힘들었던 그 시절에 일신을 투신하셨다는 것은 굳건한 신앙과 뜨거운 민족애가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그저께 27일에는 군위읍 용대리에서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과 ‘군위 청소년 수련원’ 축복식이 있었습니다. 수년 전에 이 바오로 대주교님께서 김 추기경님 생가와 그 주위의 땅과 폐교된 용대분교를 매입하셨는데 그 자리에 3년 전부터 군위군 주관으로 국비와 도비와 군비를 투입하여 추기경님 생가뿐만 아니라 경당과 전시관, 수련원 등의 시설을 갖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까이에는 교구 묘원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 가지의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9년 전 김 추기경께서 돌아가셨을 때 우리 교구는 그 당시 우리 대학의 하양 캠퍼스에서 3일 간 사제연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수를 마치는 날 두 분의 신부님과 함께 서울에 올라가 명동성당으로 조문하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택시가 명동성당에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었는데 명동 주위에 웬 사람들의 줄이 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사실 그동안 사제 연수한다고 방송이나 신문을 못 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돌아가신 추기경님 조문하러 온 것임을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날 방명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추기경님, 당신은 우리의 모범이십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는 김 추기경님처럼 그렇게 잘 살지 못했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돌아가시기 2년 전인 2007년 4월에 제가 우리 교구 보좌주교로 서품을 받을 때 불편하신 몸으로 대구까지 오셔서 축사를 해주셨는데 그동안 제가 잘 살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그립기도 합니다.

최근 며칠 사이에 제가 참석한 행사를 통하여 다시 만나게 된 세 분, 즉 나가이 다카시 박사와 안중근 의사와 김수환 추기경님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 분들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 분들이 우리 성직자들에게든, 평신도들에게든 우리들의 사표(師表)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살았던 삶과 그분들이 남긴 정신을 생각함으로써 우리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고 좀 더 열심히 잘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군위의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추기경님이 직접 그렸다는 자화상 그림이 그려져 있고, ‘서로 밥이 되어 주십시오.’라는 추기경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밥이 되어 주기보다는 서로의 밥을 뺏으려는 험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그 복음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추기경님 말씀처럼 서로 밥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은 성 목요일이고 저녁이 되면 각 성당에서는 ‘주님 만찬 저녁미사’를 봉헌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하시며 당신 자신을 우리 영혼의 양식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자신만 내세우고 자신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 밥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