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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은 짧고, 신앙은 영원하다 (한솔 이효상 선생 선종 30주기 추모미사 강론)
   2019/06/19  13:53

한솔 이효상 아길로 선생 선종 30주기 추모미사

 

2019. 06. 18(화) 앞산 밑 북카페

 

오늘로서 한솔 이효상 아길로 선생님 선종 30주기가 됩니다. 1999년 6월 10주기를 맞이하여 팔공산에 한솔 시비를 세우고 제막하는 날 참석하였던 기억이 나는데 벌써 그로부터 20년이 또 훌쩍 가버렸습니다. 
오늘 한솔 선생님의 30주기를 맞이하여 ‘앞산밑 북카페’에서 소박하게나마 추모미사를 갖게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올해가 대구가톨릭문인회가 창립된 지 35년이 되었는데 한솔 선생님께서 문인회가 창립될 수 있도록 산파역할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구가톨릭문인회에서 한솔 선생님 30주기에 이런 추모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한솔 선생님을, 세대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잘은 모릅니다. 다만 제가 학교 다닐 때인 6,70년대에는 한솔 선생님은 늘 국회의장이셨고 공화당 당의장이셨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장수 국회의장(7년 6개월)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69년도에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우리 학교 교가가 이효상 작사, 권태호 작곡이었습니다.
“팔공산 구름 위에 높이 서있고/ 금호수 푸른 물결 뛰고 노니는/ 여기 화랑이 놀던 달구언덕에/ 우뚝이 솟았구나, 우리의 대고./ 아- 그 이름 길이 온 누리에 빛나리./ 아- 그 이름 대구고등학교.”
그 때 교가를 부르면서 한솔 선생님께서 정치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글도 잘 쓰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어서 보좌신부로 첫 발령을 받은 본당이 대덕본당입니다. 한솔 선생님이 그 당시 대덕본당 신자였습니다. 그 때는 모든 정치 활동을 그만 두시고 대구에 내려오셔서 대명동 자택에 계실 때였습니다. 주일에는 물론이요, 평일에도 한 번씩 미사에 나오시는데 늘 두 내외분이 단정하게 차려입으시고 조용히 오셨다가 조용히 가시곤 하셨습니다. 
대덕성당 바로 뒤에 가르멜 수녀원이 있습니다. 그 당시는 대덕본당 신부가 가르멜 수녀원 미사를 해줘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본당신부님이신 신상조 신부님과 일주일씩 교대로 수녀원 아침미사를 드리러 다녔습니다. 한솔 선생님께서 가르멜 미사에도 가끔씩 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저는 젊은 신부라 잠이 많아서 수시로 늦게 일어나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헐레벌떡 달려가서 미사를 드리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솔 선생님의 시 중에 ‘갈멜의 종은 울고’ 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냇물 촐랑이는 소리 밖에는
죽은 듯 적적한 초가을 저녁을 
나는 나를 대면하여 앉았는데

 

매미가 운다.
한 놈이 우니 다른 놈도 다투어 운다.
무엇이 슬퍼서가 아니라 생의 찬미가다.

 

수녀들은 제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겠구나.
천사처럼 아름다운 그녀들의
나는 새와 달 밖에 보지 않는 그녀들의
그윽한 아베마리아 소리가 메아리친다면 
그 여운 따라서 내게도 소리가 날까?

 

세상을 버리고 
육친을 버리고 다시 청춘을 불살아 버리고 
평생을 그리스도와 사랑으로 대결하는
그녀들 가슴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감히 얼굴을 들 수 없는 나를 대면하여 앉았는데

 

갈멜의 종은 울고 
아울러 매미는 다시 다투어 울고
네게는 그래도 아무 소리도 손길도 없고
그러므로 나는 차라리 괘씸하게 생각되는
나를 대면하여 앉았는데
또 갈멜의 종은 울고.

 

한솔 선생님께서 이 시를 썼을 때는 아마도 60년대나 70년대 초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시냇물 촐랑이는 소리 밖에는 죽은 듯 적적한 초가을 저녁’이라고 했으니까요. 요즘 도회지에 시냇물 소리만 나고 죽은 듯 적적하기만 하는 데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동네 지명이 ‘안지랭이’이지요. 그 당시 앞산에서 내려오는 시냇물에 아낙네들이 머리를 감고 빨래를 했다고 합니다.
‘갈멜의 종은 울고’라는 시에서 한솔 선생님은, 제가 생각하기에,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갈멜의 수녀님들은 세상을 버리고, 또 청춘을 불살아 버리고 갈멜에 들어와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잠겨있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기 자신과 대비하면서 자신의 영적상태를 성찰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솔 선생님은 아시다시피 참으로 다방면에서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십니다. 선생님은 시인이셨고 교육자셨으며 철학자이셨고 정치가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앙인이셨습니다. 
한솔 선생님은 그 바쁜 일정 중에서도 끊임없이 글을 쓰시고 방대한 수많은 책들을 번역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당신의 신앙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온 생애와 업적과 정신은 가톨릭 신앙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오늘 복음(마태 5,1-12)에 나오는 산상수훈을 사셨던 분이십니다. 진복팔단의 마지막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12)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도 맞는 말이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인생은 짧고, 신앙은 영원하다.’
오늘 제1독서인 지혜서 3장 9절 말씀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위로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한솔 이효상 아길로 선생님, 주님 품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