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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마리아폴리 미사 강론)
   2019/08/05  10:22

마리아폴리 미사

 

2019. 07. 28. 연중 제17주일 (경주 코오롱호텔)

 

경주 마리아폴리에 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여러분, 행복하시지요? 이렇게 이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함께 모여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고 체험을 나누며 지내는 일이 기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폴리’(Mariapoli)요, ‘마리아의 도시’인 것입니다.

우리의 꿈은 이 세상 모두를 마리아폴리로 만드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세상 곳곳에서 기쁨의 사도, 평화의 사도, 일치의 사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에도 자주 참석하신 것으로 압니다만, 이번에도 박정일 미카엘 주교님께서 함께 하셔서 더욱 좋은 것 같습니다. 박주교님은 저의 신학교 은사 신부님이셨습니다. 제가 1972년에 대신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당시 주교님께서는 사회학과 윤리신학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75년에 군 입대를 하여 3년의 복무를 마치고 78년에 복학을 하였더니 그동안에 제주교구의 주교님이 되시어 가시고 학교에는 안 계셨습니다.

그 후 박주교님은 제주교구장만 하신 것이 아니라 전주교구장으로 가셨다가 몇 년 후 다시 마산교구장을 하셨으니까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세 군데 교구장을 하신 주교님이십니다. 주교님께서 17년 전에 마산교구장에서 은퇴를 하시고 그 동안 마산교구에 주교님이 두 분(안명옥 주교님, 배기현 주교님) 더 나오셨는데 올해 94세이신 박주교님께서 세 분 중에 가장 건강하십니다.

그 건강의 비결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니, 그것은 주교님께서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시고 주님 안에서 기쁘게 사시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 건강을 위해서 무슨 좋은 것을 드시고 무슨 운동을 특별히 하시는 것이 아니라, 늘 부지런히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시는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은퇴하신 후에 경남 창녕의 나자렛 예수 수녀원에 머무시면서 수녀님들과 그곳에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매일 미사를 드려주시고, 또 직접 컴퓨터로 기도문이나 성인 상본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도 박정일 주교님처럼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기쁘게, 부지런히 일하며 사시면 늘 건강할 수 있고 마리아폴리에도 해마다 참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제1독서인 창세기 18장을 보면, 죄악이 들끓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는 하느님께 아브라함이 간청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죄인만이 아니라 의인들도 있을 텐데 그 도시를 그냥 쓸어버리시렵니까?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인 쉰 명이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러자 주님께서는 “성 안에 의인 쉰 명을 찾을 수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용서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니, 쉰 명이 아니라 다섯이 모자라는 마흔다섯 명을 찾을 수 있다면..” 했다가 점점 40명, 30명, 20명까지 내려오더니 결국 열 명까지 내려옵니다. “주님,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그래도 멸망시키시렵니까?” “그래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도 찾았던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그 의인 열 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있어서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하느님께 간청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조카 롯이 소돔에 살고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다 살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이 세상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11,1-13)은 우리들에게 기도의 큰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던 시절에, 신자들은 상대방이 신자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주님의 기도를 할 줄 아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고기 그림을 그려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때 주님의 기도는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된 사람만이 바칠 수 있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그림이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상징이 되었던 이유는, 물고기를 뜻하는 희랍어 ‘익투스(Ixthus)’ 라는 말이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를 뜻하는 희랍어 단어들의 머리글자를 모은 것과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여튼 주님의 기도는 ‘복음서의 요약’이라고 할 만큼 우리 신앙을 집약해 놓은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가 이렇게 중요하고 자주 바치는 기도임에도 우리는 이 기도를 습관적으로 생각 없이 바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마태오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 의미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기며 기도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면 다 같이 주님의 기도를 정성들여 바쳐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하니까, 예수님께서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하시며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하여라.’라는 말을 몇 가지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다.

첫째 의미는 주님의 기도 그 자체를 말합니다. 말 그대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 그대로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의미는 주님의 기도는 물론이요, 다른 기도를 드릴 때에도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주님의 기도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시작합니다만, 원문인 희랍 말에는 ‘아빠’가 맨 먼저 나옵니다. 라틴말 주님의 기도에도 “Pater noster, qui es in coelis ..”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아버지’라는 호칭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기도를 드리든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요 특권인 것입니다.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의 세 번째 의미는 어떤 기도를 드리든지 주님의 기도의 틀을 기준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먼저 하느님 아버지와 관련한 기도를 드리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대개 우리의 기도는 자기중심적이고 세상 중심적입니다. 십자성호를 긋고 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기도 전에 이것을 해주시고 저것도 해주시고 식으로 필요한 것들을 늘어놓곤 합니다. 어떤 기도를 드리든지 기도의 우선순위는 먼저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고 그분의 나라와 뜻이 실현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다른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마지막으로 샤를르 드 푸코의 기도를 드리며 묵상하겠습니다.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저와 모든 피조물 위에 이루어진다면 이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아버지께 제 영혼을 바치옵니다. 당신은 저의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