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 사랑, 부부 사랑 (대구 ME 40주년 가족 큰잔치 감사미사 강론) |
2019/10/10 17:33 |
대구 ME 40주년 가족 큰잔치 감사미사
2019. 10. 09. 범어대성당
대구 ME 40주년 가족 큰잔치를 축하드리며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20년 전 대구 ME 20주년 행사를 할 때에는 제가 지도신부를 했었는데 벌써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대구 ME 4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세월 동안 어려움도 있었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그래도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오늘 이 자리도,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40주년 큰 잔치의 주제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루카 18,41)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어떤 눈먼 사람이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에게 다가가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말하기를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였던 것입니다.
대구 ME가 40주년을 맞이하여 왜 이 구절을 주제로 선택하였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리코의 그 눈먼 사람이 예수님께 그런 청을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기 눈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대구 ME가 40주년을 맞이하여 이 구절을 주제어로 선택한 것은 이제 우리가 제대로 눈을 떠서 새롭게, 힘차게, 그리고 기쁘게 다시 출발하자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제1독서로 신명기 31,1-8을 읽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던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자기 자리를 여호수아에게 물려주며 백성들과 여호수아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장차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힘과 용기를 내어라. 주님께서 친히 네 앞에 서서 가시고, 너와 함께 계시며, 너를 버려두지도 저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니, 너는 두려워해서도 낙심해서도 안 된다.”(신명 31,7-8)
40주년을 맞는 대구 ME도 이제 하느님 백성으로 거듭 태어나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건너가야 하겠습니다. 모든 ME부부가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두려움 없이 서로 손을 잡고 사막에서 약속의 땅으로, 미움과 원망에서 사랑과 희망의 땅으로 건너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10월 9일이 무슨 날입니까? 한글날입니다. 외국말을 배우다보면 한글의 우수성을 새삼 느끼게 되는데, 한글을 만드신 세종 임금님께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5월 15일이 스승의 날이지요. 그날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은 그날이 바로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이신 세종대왕의 탄생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월 14일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발렌타인 데이(Valentine Day)’입니까? 원래 3세기의 로마의 순교자인 성 발렌티노(St. Valentinus) 기념일입니다. 지금은 연인들이 초콜릿이나 사탕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고백하고 확인하는 날이 되었습니다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상업적으로 변한 발렌타인 데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몇 년 전 어느 일간지에, ‘오늘날 사람들이 발렌타인 데이는 알면서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은 모르고 있으니 개탄스럽다.’는 논설이 실린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은 바로 안중근 의사께서 지금부터 109년 전에 중국 여순에 있는 관동 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날입니다. 지난 주(10월 3일-6일)에 교구 평신도위원회 임원들과 함께 중국 하얼빈과 소팔가자, 그리고 여순을 다녀왔습니다.
안 의사께서는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은 그날 두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에게 보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인 김아려 여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부인에게 보낸 편지를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분도 어머니에게 부치는 글
예수를 찬미하오. 우리들은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천주의 안배로 배필이 되고 다시 주님의 명으로 이제 헤어지게 되었으나 또 머지않아 주님의 은혜로 천당 영복의 땅에서 영원에 모이려 하오. 반드시 감정에 괴로워함이 없이 주님의 안배만을 믿고 신앙을 열심히 하고 어머님에게 효도를 다하고 두 동생과 화목하여 자식의 교육에 힘쓰며 세상에 처하여 심심을 평안히 하고 후세 영원의 즐거움을 바랄 뿐이오. 장남 분도를 신부가 되게 하려고 나는 마음을 결정하고 믿고 있으니 그리 알고 반드시 잊지 말고 특히 천주께 바치어 후세에 신부가 되게 하시오. 많고 많은 말을 천당에서 기쁘고 즐겁게 만나보고 상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을 믿고 또 바랄 뿐이오.
1910년 경술 2월 14일. 장부 도마 올림.”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에게 올린 편지에서도 장남 분도를 꼭 신부가 되게 해달라고 하였지만 그 아들은 안타깝게도 12살 때 연해주에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이야기가 아니라, 그 편지글을 보면 안 의사의 아내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과 존중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하느님과 영원한 삶에 대한 깊은 신앙이 깔려있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다른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배우자를 신뢰하고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정말 행복한 부부가 될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는 1요한 4,7-12입니다. 여기에서 사도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3년 동안 가까이에서 모시고 동고동락했던 결과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
우리가 하느님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옆에 앉은 분과 서로 손을 잡으시고 ‘고마워요, 당신!’하고 인사를 나눕시다. 아침 저녁으로 그렇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싸울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올해 우리 교구는 성모당 봉헌 100주년의 2년차로서 ‘용서와 화해의 해’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냉담교우 회두와 선교에 힘쓰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우리도 ME부부로서 부부 서로 간에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부부들과도 용서와 화해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쉬고 있는 ME부부들을 다시 모우고, ME를 모르는 부부들을 더욱 많이 초대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ME의 이상과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모든 부부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루카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