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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낮은 곳, 어려운 곳, 필요한 곳으로 (양수산나 한국 오심 60주년 감사미사 강론)
   2019/12/09  16:56

양수산나 한국 오심 60주년 감사미사

 

2019. 12. 08.

 

오늘 우리는 먼저 양 수산나 여사께서 한국에 오신 지 60주년이 된 것을 경축하며, 하느님께서 양 수산나씨를 우리들에게 보내주심에 감사드리고, 양 수산나씨를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심에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원래 성함이 Susannah Mary Younger인데 Susie Younger라고도 합니다. 성이 Younger인 것 같은데 그래서 한국 성을 발음이 비슷한 ‘양’ 씨로 택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Younger라는 말은 Young의 비교급이지요. 하여튼 ‘젊다’는 뜻인데 양 수산나 씨가 성함 그대로 늘 성격이 밝고 쾌활하여 늘 젊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양 수산나씨가 60년 전 그 어려운 환경인 우리나라에 오셔서 많은 사람들을 도우시면서 그렇게 밝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가슴 속에 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60년 전 바로 오늘 양 수산나씨는 SOS어린이마을 초대원장을 하셨던 하 마리아씨와 함께 우리나라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임실치즈로 유명한 지정환 신부님을 비롯한 다섯 분의 서양 신부님들과 두 분의 수녀님과도 함께 오셨는데, 수산나 씨는 그 당시 효성여대에 줄 피아노 일곱 대를 배에 싣고 오셨다고 합니다.

이 분들이 한 달이 넘는 긴 항해 끝에 드디어 부산항에 도착한 날이 1959년 12월 8일 아침이었습니다. 그날이 바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올해는 대림2주일과 겸치는 바람에 내일 대축일을 지내도록 되어있습니다만,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한국교회의 수호자이시기 때문에 그날이 한국천주교회 주보축일인 것입니다. 참으로 오묘한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됩니다.

양 수산나씨가 대구에 와서 처음 시작한 사업이 어려움에 처한 근로 청소년들과 여성들을 위한 안식처 마련과 그들을 위한 교육이었습니다. 특히 1962년에 대구 삼덕동에 ‘대구가톨릭여자기술원’(현재 가톨릭푸름터)을 설립하여 오랫동안 원장으로서 봉사하였습니다. 이것이 대구의 여성복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달 매일신문에 기사로도 실렸습니다만, 양 수산나 씨는 1960년대 중반에 하양성당의 이임춘 신부님을 도와서 하양지역의 주민들의 일자리 마련과 소득 증대를 위해 영국의 구호단체들로부터 후원을 받아서 하양 무학산 기슭에 농장을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몇 년 후 어떤 어려움이 발생하여 농장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무학중학교가 탄생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이 또한 양 수산나 씨는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하시고 계십니다.

양 수산나씨는 직접 하시는 사회복지만이 아니라 교회의 사도직 협조자로서 참으로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셨습니다. 프랑스 루르드에 있는 Auxilium 문화양성센타에서 연수를 받고 와서 한국의 5개 교구에 전해주었고 특히 우리 대구대교구에 가장 많은 Auxilista를 양성시켰습니다. 이분들이 교회와 사회 구석구석에서 하느님과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양수산나씨는 대구가톨릭사회복지의 어머니와 같으신 분입니다. 우리들에게 사회복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복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랑과 정성으로, 성모님과 같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산나 씨는 영국사람이지만 20대 꽃다운 나이에 한국에 시집와서 시집살이를 잘 하고 계십니다. 우리나라 전통은 한 번 시집을 가면 그 시집에서 뼈와 살을 다 묻어야 합니다. 양 수산나씨는 그 전통을 잘 지키고 계십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나서 옥스퍼드대학까지 졸업한 사람이 무엇 때문에 한국에 오셔서 그 고생을 하셨을까? 보통 세상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참된 신앙인은 이 세상의 어떤 명예나 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할 뿐이며 하느님의 나라가 실현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수산나씨가 한국에 온 것은 어떻게 보면 하느님의 강생의 신비, 즉 성탄의 신비를 생각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어 사람이 되신 것이 강생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더 낮은 곳으로, 더 어려운 곳으로, 더 필요한 곳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강생의 신비는 하느님의 무한한 낮춤, 무한한 비움의 신비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강생,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제2주일입니다. 오늘 복음 마태오 3,1-12을 보면, 세례자 요한의 등장과 활동이 나옵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마련하기 위해 먼저 파견된 사람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11)

양 수산나씨는 세례자 요한의 역할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준비할 뿐이며 모든 영광은 하느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양수산나씨, 지난 60년 세월 동안 참으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당신을 이 한국 땅으로 보내주신 하느님께서 큰 상을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성모님의 보호하심으로 영육으로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