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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과 연민 (5-9년차 단계별 사제연수 파견미사 강론)
   2022/08/22  10:14

5-9년차 단계별 사제연수 파견미사

 

2022. 08. 19.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제주 엠마오연수원

 

이번 사제연수는 참으로 획기적인 연수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구 사제 연수는 하루, 아니면 2박3일 한 것이 전부인데, 이번에는 무려 11박 12일, 그것도 제주도에 와서 연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성직자국장 서보효 신부님이 제안해서 이렇게 된 일인데 좋았습니까? 어제 오후에 동기별로 간담회를 가졌는데 다들 좋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좋았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피정이나 연수를 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서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변화와 성장을 완성시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제 최시영 신부님의 마지막 강의에서 나온 얘기입니다. 그것은 습관이라고 했습니다. 좋은 습관,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것이라 했습니다. 즉 깨달음과 새로운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습관이 되도록 하는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제주도 연수는 휠링을 겸한 연수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박영일 신부님이 재미있다고 해서 저도 봤는데 제가 휠링이 되었습니다. 제주도 남쪽 ‘푸릉’이라는 어촌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을 이야기하는 드라마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느 한 사람 잘 난 사람 없고, 못난 사람도 없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인데 모두들 자기 나름의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웃 사람들과 부대끼고, 어떤 때는 서로 싸우면서 상처를 하나, 하나 씻어내고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종교 이야기, 성경 이야기 한 마디 나오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복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삶에는 휠링이 필요합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치유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생기를 얻고 기쁨과 보람을 가지고 자신의 소임에 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번 연수가 여러분들에게 그런 좋은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복음(마태오 22,34-40)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들려주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37-39)

아마도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을 때는 ‘십계명 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이냐’고 물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이 아니라 성경(신명기와 레위기)에 나온 말씀으로 대답을 하십니다. 그리고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과 같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종종 이 두 계명을 분리하여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 사랑에는 등한시하는 것입니다.

루카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이웃사랑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비유를 보면, 사제도, 레위인도 길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갑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어떤 주석서를 보니까, 그 당시 에리코는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사제들이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사제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길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지나친 것은, 죽은 사람을 가까이 했을 때 부정을 타서 일정 기간 동안 일을 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자신의 몫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우려 때문에 그냥 지나갔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결국 돈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는 일반 사람들뿐만 아니라 성직자, 수도자에게도 같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하지 않으면 돈과 권력과 명예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이끌어 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리사이파에 속하는 어느 율법교사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비판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이 바리사이들이고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신앙적으로 매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고, 사회적으로도 모범적인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비난을 가장 많이 듣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들 마음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 마음에 측은지심, 즉 연민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어 ‘compassion’이라는 말이나 ‘sympathy’라는 말은 고통을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와 함께 기쁨도 함께 하고 고통도 함께 나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오는 사람들은 곧잘 티격태격 대며 싸우지만 기쁨뿐만 아니라 아픔도 함께 하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목은 기술이 아니라 자세요, 태도이며 마음가짐이고, 행동이며 사랑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