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Home > 교구장/보좌주교 > 교구장 말씀
제목 이제 당신이 오시어 (주님부활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 강론)
   2023/04/11  10:35

주님부활대축일 파스카 성야

 

2023. 04. 08. 범어대성당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자비가 여러분들에게 가득하시길 빕니다. 특별히 가난과 질병과 전쟁 등으로 고통받고 어려움 중에 있는 분들에게 하루빨리 고통과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오늘 복음(마태 28,1-10)을 보면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더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러져 있었고, 한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나는 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5-6)

이 천사의 말처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여전히 죽음의 세력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시리아 내전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개발 국가의 극빈층은 먹을 것이 부족하여 심각한 영양 결핍에 시달리고, 아파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서 흉악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소외 계층들은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음의 세력이 아직도 건재하며 위세를 떨치는 듯이 보입니다.

그래서 마치 죽음의 세력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로 우리는 죽음의 세력을 극복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죽음의 세력은 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썩을 몸은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합니다.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1코린 15,53-55)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주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20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셔서 그냥 좋은 일을 하시다가 악당들에게 붙잡혀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분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2000년 전에 있었던 그 부활 사건만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우리도 장차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에 들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이 미사 중에 세례식이 있을 것입니다. 세례식이 없더라도 세례 서약 갱신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에 세례식을 하는 것은 교리적으로, 그리고 전례적인 의미로 아주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오늘 제2독서(로마 6, 3-11)에서 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예수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하심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을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여러분도 믿습니까? 그럼, 부활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여자들이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고 합니다. 우리도 크게 기뻐하며 주님의 부활을 전하기 위하여 이웃에게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국 주교회의 산하에 있는 한국사목연구소에서 코로나19 이후의 한국천주교회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것을 발표하였는데, 주일미사 참례자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70% 정도밖에 회복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사에 나오지 않은 이유 중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이 놀랍게도 ‘안 나오는 것에 익숙해져서’ 라고 합니다. 별 이유도 아닌 것이 제일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습관이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봉독했던, 마태오가 전한 수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이제 때가 가까웠다. 일어나 가자.”(마태 26,45)

우리도 이제 일어나 가야 합니다. 자고 있는 사람, 쉬고 있는 사람들을 깨우러 가도록 합시다. 봄나들이, 꽃 구경만 하러 가지 마시고,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 쉬고 있는 사람에게 주님의 부활을 전하러 갑시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중에 ‘이제 당신이 오시어’라는 시가 있는데 부활에 대한 시입니다. 이 시 낭독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세상은 무겁고

죽음은 어둡고

슬픔은 깊었습니다.

절망의 벼랑 끝에

눈물 흘리던 시간 위엔

고통의 상처가 덧나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이제 당신이 오시어

우리를 부르십니까?

두렵고 황홀한 번개처럼 오시어

우주를 흔들어 깨우십니까?

차가운 돌무덤에 갇혔던 당신이

이렇게 따뜻하게 살아오시어

세상은 잃었던 웃음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기뻐서 하늘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모든 순간들이

부활의 흰 꽃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날마다 조금씩 아파하는 인내의 순간들이

부활의 흰 새로 날아오르게 하소서.

예수께서 직접 봄이 되고

빛이 되어 승리하신 이 아침

아아, 이젠 다시 살아야겠다고

풀물이 든 새 옷을 차려입는

처음의 희망이여, 떨림이여.”

 

부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