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제 양성의 중요성 (전국 가톨릭대학교 교수신부협의회 미사 강론) |
2023/06/22 9:14 |
전국 가톨릭대학교 교수신부협의회 미사
2023. 06. 20.(화)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한 4년 만에 전국 가톨릭대학교 교수신부협의회 모임이 대구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여러 신부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유익한 모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1831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께서 조선대목구를 설정하시고 파리외방선교회에 선교와 사목을 맡기셨습니다. 그리하여 신부 때부터 사제가 한 명도 없는 조선의 딱한 사정을 일찍 전해 듣고 조선 선교를 지원한 바 있는 브뤼기에르 주교님께서 초대 조선대목구의 대목구장이 되시어 조선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으로 오는 과정에 내외부적으로 수많은 난관이 있었고 결국 브뤼기에르 주교님은 자신의 교구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시고 중국의 마가자 교우촌에서 선종하시고 말았습니다.
그 후 성 앵베르 범 주교님부터는 많은 파리외방선교회 신부님들이, 언제 붙잡혀서 순교할 줄도 모르는, 박해의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조선에 들어왔었고, 그래서 많은 신부님들이 이 땅에서 목숨을 바쳤던 것입니다.
1911년에 조선대목구는 서울대목구와 대구대목구로 분할되었는데, 대구대목구의 초대 교구장이신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과 2대 교구장이신 문 제르망 주교님도 파리외방선교회 출신입니다.
파리외방선교회가 조선 선교를 맡으면서 중점적으로 사목하였던 것 중의 하나가 방인사제 양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이 탄생할 수 있었고, 오늘날의 한국천주교회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1911년 6월 11일에 명동성당에서 주교서품을 받고 6월 26일에 대구에 부임하신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는 처음 맞이하는 주일인 7월 2일에 계산성당에서 ‘루르드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를 교구 수호자로 선포하시고, 교구의 당면 과제 세 가지를 도와주시기를 청원하셨습니다.
그 세 가지란, 주교관 건립과 신학교 건립, 그리고 계산 주교좌성당 증축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회장님께서 기증하신 이 땅에 1913년에 주교관이 건립되었고, 1914년에는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건립되었던 것입니다.
왜 학교 이름이 ‘성 유스티노’냐 하면, 당시 신학교 건립을 위해 중국 상해에 사는 어떤 신자분이 거액을 기부하면서 성 유스티노를 주보성인으로 할 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스티노 성인이 어떤 분이신지는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성 유스티노 신학교는 1945년 3월 19일에 일제의 압박에 의해 폐교될 때까지 30여 년 동안 67명의 사제를 배출하였습니다. 대구교구 제4대 교구장이셨던 주재용 신부님, 6대 교구장이셨던 최덕홍 주교님, 7대 교구장이셨던 서정길 대주교님, 그리고 부산교구 초대 교구장이셨던 최재선 주교님, 마산교구 제2대 교구장이셨던 장병화 주교님께서 성 유스티노 신학교 출신입니다.
대구신학교는 1982년에 ‘선목신학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교하였다가 10여 년 후부터는 ‘대구가톨릭대학교’라는 종합대학 안에서 성 유스티노 캠퍼스에 다시 자리 잡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천주교회의 발전과 성장을 가져온 것은, 성직자든 수도자든 많은 성소 개발과 사제 양성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학교는 교회의 중심이고 사제 양성은 교회 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소 개발과 사제 양성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과 난관과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우리는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 어려움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저는 세속화가 가장 큰 난관이요 도전이라 생각됩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신자들뿐만 아니라, 성소를 지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사제가 된 사람들까지도 세속화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사제 양성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미래 교회를 어떻게 대비하고 가꾸어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민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마태 5,43-48)은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산상설교의 일부분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산상설교는 새로운 정의에 대하여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러이러한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는 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새롭게 정의를 내리십니다. 결론적으로 산상수훈은, 오늘 복음에서 하신 말씀, 즉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는 말씀대로 살라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더욱 완전한 사랑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에 나오듯이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새 계명을 준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새 계명이라는 말씀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계명이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오늘날 성소자가 감소하고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때에 한 사람이라도 좋은 사제를 만들어야 하겠다는 소명의식을 우리 모두가 새롭게 가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다’는, 오늘 제1독서(2코린 8,1-9)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하신 말씀이 우리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유스티노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