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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비로이 부르시니 (2023년 1차 사제피정 파견미사 강론)
   2023/07/10  10:48

2023년 1차 사제피정 파견미사

 

2023. 07. 07.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한티피정의 집

 

이 무더운 여름에 피정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피정하는 것이 피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으로 마태오복음 11,28을 들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피정은 세상과 자신의 직무에서 잠시 떠나 주님 안에서 안식을 가지며 재충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번 피정은 분도회의 임 엘렉타 수녀님의 지도로 루카복음 통독 피정을 하였는데 좋은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마태 9,9-13)은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 세리를 당신 제자로 부르셨을까? 그 당시 사람들의 감정이나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고기 잡는 어부까지는 괜찮은데, 더 나아가 열혈당원까지는 괜찮은데, 매국노 취급을 받던 세리를 제자로 부를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세리는 창녀와 함께 죄인으로 취급받는 대표적인 직업군이었던 것입니다.

지난 주일이 ‘교황 주일’이었습니다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사목 표어가 “자비로이 부르시니”입니다. 교황님의 이 사목 표어는 베다 성인께서 오늘 복음 장면을 해설한 말씀에서 따온 것이라 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처음 주교가 될 때 이 말씀을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잘난 사람을 골라서 제자로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고만고만한 사람들을 부르시고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잘 나서 신부가 되고 주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순전히 하느님의 자비로 부르심을 받았고 사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족한 것이 많지만, 주님의 자비로 부르심을 받고 사제가 되었기에,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마태 9,13)

하느님의 뜻은 자비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님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면서 ‘이제 교회가 엄격함이 아니라 자비를 선포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제16차 세계 주교 시노드를 개최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식별하고 실천하자는 의도라고 생각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사목의 가장 큰 주제, 정신은 당신의 사목 표어에도 나오듯이 ‘자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비의 정신이 교황님의 사목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자비의 영성에서 연민과 환대의 영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한 7년 전에 우리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을 맞이하여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자비의 특별 희년의 주제 성구는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였습니다.

 

빅톨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 앞부분 일부가 예전에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습니다. 내용을 다 아시겠습니다만 잠시 이야기하자면, 장 발장이란 사람이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쳤는데 5년 형을 받고 감옥에 갇힙니다. 조카들이 걱정이 되어 탈옥을 하는데, 그것도 네 번이나 하는 바람에 19년 동안 수감생활을 합니다. 드디어 출소하여 사회에 나왔지만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교님의 도움으로 주교관에서 머물게 되는데 마음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은식기들을 훔쳐 가지고 나오다가 경찰한테 붙잡힙니다. 그래서 경찰이 장발장을 데리고 주교관으로 갔는데 주교님께서 ‘그것들은 내가 준 것이다.’고 하며 은촛대까지 주면서 ‘이것은 왜 안 가져 갔는냐?’ 함으로써 장 발장을 구해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전반부는 이렇게 시작하는데, 장 발장은 그 주교님으로부터 감화를 받고 새 사람이 되기를 결심하고 많은 좋은 일을 하여 어느 작은 도시의 시장까지 되지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자베르 형사의 끈질긴 추격으로 끝없는 도피 생활을 합니다. 그 와중에 프랑스 혁명을 겪게 되고 자베르 경감은 혁명군들에게 붙잡히게 되어 죽을 위험에 빠지게 되는데 장 발장이 그를 구해 줍니다. 자신을 죽게 내버려 둘 줄 알았던 자베르는 장 발장의 자비에 혼란을 겪게 되고 결국 센강에 몸을 던지고 맙니다. 그리고 장 발장은 마지막 생애를 수녀원 정원사로 봉사하며 살다가 자신의 양녀와 그녀의 신랑 품에서 생을 마칩니다. 그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남깁니다. “사랑하는 것은 서로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것이란다.”

소설 제목이 ‘레 미제라블’, 즉 ‘불쌍한 사람들’이지만 자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자비와 용서와 관대함의 모습이 날로 사라져가는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먼저 하느님 자비의 영성을 살고 전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달에 발행된 한국 천주교 사제 양성 지침 개정판 제3장 9항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제는 그리스도께 동화되어 교회와 세상에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의 가시적 표지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가 하는 이런 피정이나 성경 묵상 등은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께 동화되어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표지가 되라는 것임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 피정을 마치면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식별하며 주님의 자비를 잘 살아가는 사제가 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