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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받으시옵소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종신서원 미사 강론)
   2024/02/06  9:56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종신서원 미사

 

2024. 02. 02.

 

오늘 이 미사 중에 두 분의 수녀님(안숙정 크리스티나, 김지예 엘리사벳)께서 종신서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수녀님들에게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길 빕니다. 그리고 주보 성인이신 성 바오로 사도께서 수녀님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열심히 전구해 주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오늘 ‘주님 봉헌 축일’에 수도자들과 수도 성소를 위해 ‘축성 생활의 날’을 지내도록 하셨습니다. 이 뜻깊은 날에 종신서원을 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한 2주 전에 범어대성당 드망즈홀에서 관덕정순교기념관 주최로 ‘순교자 현양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성음앙상블’이란 여성 중창단이 최민순 신부님의 시에다가 서행자 수녀님이 곡을 붙인 ‘받으시옵소서.’라는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곡도 좋지만 가사가 좋아서 앞부분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받으시옵소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아니더라도, 여기 육신이 있습니다. 영혼이 있습니다. 본시 없던 나, 손수 지어 있게 하시고, 죽었던 나, 몸소 살려 주셨으니, 받으시옵소서. 임으로 말미암은 이 목숨, 이 사랑, 오직 당신 것이오니, 도로 받으시옵소서.”

최민순 신부님은 우리가 매일 바치는 성무일도서의 시편을 번역하신 분이십니다. 제가 화원본당 출신인데 신학생 때 그 당시 김동한 신부님을 찾아오신 최민순 신부님을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1975년 8월에 선종하셨는데,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장례미사를 집전하시고 강론하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강론을 시작하시면서 이 시를 들려주셨습니다. 이 시가 최 신부님의 유시, 유고 시라고 합니다.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조건없이 봉헌하는 정신이 담겨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수녀님들도 오로지 주님께 다 봉헌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복음(요한 15,9-17)은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두 번째 고별사 중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고별사의 핵심은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9)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간곡하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앞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 말씀에서처럼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주님 안에 항구하게 머물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주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노력하고, 부족한 저희를 도와주시도록 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영적 성숙은 반드시 우리가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교구가 지금 ‘친교의 해’를 지내고 있는데, 진정한 의미의 ‘친교’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친교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특히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주님과의 친교, 주님과의 친밀함을 다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의 친밀함 안에서 다른 사람과의 친밀함이 더욱 증진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11)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쾌락이나 즐거움과는 다른 것입니다. ‘쾌락은 감각에서 오고, 즐거움은 환경에서 오며, 기쁨은 주님에게서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쾌락과 즐거움 자체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것이 참된 기쁨을 대치하려고 할 때에는, 다시 말해서 거짓 기쁨 노릇을 할 때에는 나쁜 것입니다. 성직자 수도자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도 주님에게서 오는 참된 기쁨을 도외시하고 쾌락과 즐거움만 쫓아 산다면 문제가 아니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하느님에 대한 영적인 갈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 머물러야 영적인 기쁨에 충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느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영적으로도 빈약하게 되면 유사하면서도 거짓스러운 기쁨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지경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늘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의 기쁨을 찾지 못한 신자들의 얼굴을 보면 절인 고추처럼 보입니다. 기쁨을 느끼지 못하니 마음에 주름이 생기도 표정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이란 단순한 재미가 아닙니다. 좀 더 깊은 차원의 선물입니다.”(2013년 5월 13일 마르타의 집 강론)

 

우리 수녀님들이 신앙의 기쁨, 복음의 기쁨, 하느님 사랑 안에 사는, 충만한 기쁨을 스스로 살 뿐만 아니라 세상에 드러내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보다 먼저 이러한 기쁨을 살았던 성모님과 성 바오로 사도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길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