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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머니의 밥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님 선종 3주기 추모미사 강론)
   2024/03/19  9:15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님 선종 3주기 추모미사

 

2024. 03. 14.(목) 11시 군위가톨릭묘원

 

오늘로써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님께서 하느님 나라로 떠나신 지 꼭 3년이 되었습니다.

3년 전 장례 기간 중에 어느 언론사 기자님이 이 대주교님에 대하여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난 뒤에 개인적인 추억이 있다면 들려달라고 해서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별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한 40년 전에 강원도 인제에서 군종신부로 근무할 때였는데, 당시 저희 군단장님이 열심한 신자인 신치구 벨라도 장군님이었습니다. 신치구 장군님은 1년에 한두 번은 김수환 추기경님을 초대하셨습니다. 고성 GOP 전망대 옆에 북한을 향하여 기도하시는 모습의 대형 성모상을 세워 제막식을 가질 때도 김 추기경님을 초대하셔서 축복식을 주례하시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가을 주교회의를 마치고 김 추기경님과 이 대주교님께서 같이 그 강원도 인제까지 오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당시 몰고 다니던 포니 원 자동차에 두 분을 태워서 남설악 단풍 구경을 시켜드렸던 추억이 있다는 이야기를 그 기자한테 들려주었었습니다.

2년 전에 김수환 추기경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성모당에서 추기경님 관련 사진 전시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40년 전에 두 분을 모시고 설악산 오색에서 찍은 사진을 그 전시회에 내놓았었는데, 지금도 군위 용대리에 있는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에 가면 그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작년 2월에 신치구 벨라도 장군님도 92세의 연세로 하느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기억하고 존경하던 어르신들은 떠나가고, 우리들이 어느듯 어른이 되어 그분들이 이루어 놓은 이 교회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 대주교님께서는 글을 잘 쓰시고 시를 잘 쓰셨습니다. 쓰신 시 중에는 어머니를 주제로 쓰신 것이 제일 많은 것 같습니다. 1990년 12월 23일에 사제서품 25주년 은경축 때 발간한 ‘일기’라는 시집에 ‘어머니’라는 제목의 시가 8편이나 있습니다.

은퇴 후에 쓰신 시 중에도 ‘어머니...’라는 시가 있습니다. 재작년에 ‘사람이 사랑이 되다’라는 대주교님의 유고집을 내어 거기에 실었습니다만, 지금 그 시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만났다.

‘내게 와서 밥을 먹어라. 그러면 너는 밥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말하고 돌아 나왔는데

어머니는 천당에 가신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나도 천당에 가느냐, 아니면 세상의 밥을 지어 먹느냐는 문제가 나타났다.

눈을 뜨고 생각해 보아도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겠다.

그럭저럭 날이 밝아서 꿈은 밤과 함께 사라졌다.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서 어머니의 모습을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어머니와 함께 살 때를 생각했다. 어머니의 밥을 먹고 정답게 살 날을 생각했다. 엄마!”

 

이 대주교님은 옛날 유학 시절에 자취생활을 하셔서 그런지 밥을 잘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은퇴하시고 난 뒤에도 한동안은 가능한 한 당신이 직접 밥을 지어 드셨습니다. 그래서 방금 들려드렸던 시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저도 나이가 칠십이 넘어서니까 ‘앞으로 은퇴하면 밥을 어떻게 지어 먹지?’ 하는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하루 세 끼 밥 챙겨먹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대주교님께서 남기신 유언서는 2008년, 2009년, 2014년, 이렇게 세 개가 있었습니다. 세 장의 유언서마다 남기신 말씀이 비슷합니다만, 주된 것은 ‘한 일보다 받은 은혜가 많다는 것’과, 당신을 ‘군위에 묻어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군위에 이 묘지를 마련하신 것도 이 대주교님이시고, 그리고 대주교님 부모님과 형님도 이곳에 묻혀 계십니다. 그리고 11년 전부터는 교구 신부님들이 돌아가시면 더 이상 남산동에 묻지 않고 이곳에 묻습니다.

그래서 이곳 군위 성직자 묘지에는 이 대주교님을 비롯하여 여러 신부님들이 묻혀 계십니다. 그런데 나이가 비교적 젊으신데 하느님 나라로 떠나신 분들도 계십니다. 오늘 성경 말씀이 이분들에게 큰 위로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의인은 때 이르게 죽더라도 안식을 얻는다. 영예로운 나이는 장수로 결정되지 않고 살아온 햇수로 셈해지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예지가 곧 백발이고 티 없는 삶이 곧 원숙한 노년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께 선택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지혜 4,7-9.15)

그리고 오늘 복음(요한 6,37-40)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요한 6,39)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마냥 슬퍼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순 제4주간 목요일’입니다. 3년 전 오늘은 ‘사순 제4주일’이었습니다. 사순 제4주일을 일명 ‘기쁨의 주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날 미사 입당송에서 우리는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하고 노래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날이 가까이 왔고 주님을 뵐 날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 2장 17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주님,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와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